되짚어 본 宋외교의 `8+6+9'메모

  • 입력 2007년 9월 2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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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일행이 납치된 지1주일째 되던 지난 7월25일 오후 국회상임위 연석회의에서 송민순 외교장관이 김장수 국방장관에게 건넨 쪽지가 언론에 포착됐다.

이 쪽지엔 '8+6+9'라는 숫자가 위에 있고 '8+6'과 '9'를 세로줄로 나눈 뒤 8+6 밑엔 '돈, 해결', 9 아래엔 '강경, 살해 可(가)'라는 말이 적혔다.

이 회의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아프간 피랍문제를 다룬 것이었고 세 숫자를 모두 합하면 피랍인의 수 23명과 일치했기 때문이 이는 당시 외교부가 파악한 인질과 탈레반의 자세한 상황으로 풀이됐다.

즉 정부는 인질이 3개 그룹으로 나뉘었고 이 중 2개 그룹 14명(8+6)은 온건파에, 9명은 강경파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정부가 파악하고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특히 메모 전달자가 송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이 메모의 의미가 크게 부각됐었다.

그러나 이는 석방 뒤 31일 카불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유경식 씨가 밝힌 피랍 상황과 약간 차이를 보인다.

유씨에 따르면 피랍 초기 23명은 함께 억류돼 있다가 '네 밤을 자고'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피랍 뒤 4박5일 뒤면 7월23일이며 이 때 11명과 12명으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이후 탈레반은 며칠 뒤 11명을 4명과 7명으로 나누었고 다른 그룹의 12명은 6명씩 2개조로 나누고 이들은 다시 2¤4명씩 소규모로 쪼개졌다는 게 유씨의 증언이다.

따라서 국회 상임위 당시 아프간 피랍 인질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 상황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12명으로 갈라진 그룹에 살해된 배형규 씨와 심성민 씨가 있었다는 유씨의 증언으로 미뤄 이들 12명을 억류한 탈레반이 강경파였던 것으로 보인다.

송 장관의 메모대로라면 정부는 탈레반 온건파(14명)와 강경파(9명)가 인질을 양분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정확히 파악했지만 인질 숫자상으로 유씨의 증언(온건 11명 ㆍ강경 12명)과 차이를 보인다.

정부는 강경파가 적은 인질을 억류중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으나 실상은 이들이 다수의 인질(12명)을 잡고 있었다는 점도 엇갈리는 부분이다.

상임위 당시 인질이 최대 4개 그룹(4ㆍ7 / 6ㆍ6명)으로 나눠졌다고 가정하고 이들 숫자로 조합을 해봐도 송 장관의 메모에 쓰인 '8+6+9'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피랍초기 탈레반이 살해위협과 협상시한 운운하며 언론을 통한 교란전술을 펴고 있고 인질들의 이동이 잦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가 당시 정확하진 않지만 비교적 '오차 범위' 안에 드는 인질의 숫자까지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한국 정부가 탈레반의 강ㆍ온파가 인질을 나눠 억류하고 있다는 내부 사정도 알고 있었고 석방을 둘러싸고 이 들 간 요구조건에 이견이 있었던 것도 정부는 간파하고 있었을 확률이 아주 높다.

공교롭게도 상임위가 열렸던 25일 배 씨가 처음으로 희생된 점과 메모에 '살해 可'라고 적힌 사실로 미뤄 정부도 탈레반이 위협에 그치지 않고 실제 인질 살해까지 염두에 둘만큼 위기상황이었던 것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 같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이후에 심씨가 또 살해된 것은 직ㆍ간접 채널로 탈레반을 설득하거나 압박할 단계나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 메모가 외교부의 정식 문건이 아닌 만큼 어느 '소스'에서 보고 된 정보인지, 정확히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 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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