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있는 곳에 유시민 있었다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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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없는 범여권 대통합은 과연 이뤄질까.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그 난관의 핵심이 유시민 의원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도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당초 ‘배제론’을 주장했을 때 그 대상이 애매모호한 데다 범위도 넓었지만 ‘친노(親盧·친노무현) 세력’→‘국정 실패 세력’→‘핵심적 국정 실패 인사’ 등으로 점점 좁아지더니 지금은 단 한 사람, 유 의원으로 모아지는 형국이다. 박 대표는 사석에서 “배제 세력 없는 대통합? 유시민도 함께 가자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른바 대통합론자나, 아직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붙잡고 있는 의원들도 “유시민만 탈당해 주면 신당 창당도 필요 없는데…”라는 고민을 토로한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이 “한 사람도 배제돼서는 안 된다”고 하자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유시민도 함께 가자는 것이냐. 유시민을 안고 가겠다면 내가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 의원이 이처럼 ‘왕따’가 된 것은 범여권이 새천년민주당으로 하나일 때인 2003년 4·24 재·보궐선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친노파가 개혁당 유 의원을 연합 공천하자고 하자 박 대표, 정균환 전 의원 등은 “좌파 정당 하자는 것이냐”며 결사반대했다.

결국 유 의원 당선으로 당위성을 쌓은 신당파는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새천년민주당이 쪼개진 발단이 유 의원이란 얘기다.

올해 초 염동연 의원 등의 열린우리당 탈당을 부추긴 장본인도 유 의원이었다고 상당수 의원은 분석한다. 2005년 10·26 재·보궐선거 참패 직후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쇄신을 요구하자 유 의원은 “대통령이 여당에서 탄핵을 당했다”며 당청(黨靑) 관계를 ‘친노’ 대 ‘반노(反盧·반노무현)’ 싸움으로 돌려놓아 반노 인사들이 탈당할 수밖에 없게 했다는 것이다.

2005년 4·30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뒤 민주당과의 통합을 꾀할 때도 유 의원은 반대 의견을 밝혔다. 통합 논의가 공식화하자마자 “조선시대 보쌈도 아니고, 싫다는 상대를 갖고 계속 결혼하자고 우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유 의원이 범여권 통합의 걸림돌로 평가되는 데엔 노선 차보다는 감정적, 정서적 거부감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이 유 의원에 대해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비판한 것은 범여권 의원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한 중진 의원은 “유시민은 위아래도 없고, 남의 상처를 헤집어 소금까지 뿌린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유 의원에 대한 ‘안티’가 오히려 대선 출마를 검토 중인 그를 돕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열광적인 친노 지지층이 유 의원을 중심으로 세(勢)를 결집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유 의원의 누나인 소설가 유시춘 씨는 최근 범여권 대선주자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선거 캠프에 홍보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유 씨는 1988년 재야 단체였던 ‘평화민주통일연구회’에서 이 전 총리와 함께 활동했으며, 김대중 정부 후반기부터 노무현 정부 전반기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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