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애 있다면 데려와라, DNA검사도 하겠다”

  •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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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위원장과 악수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왼쪽)가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경선 후보 검증청문회를 마친 뒤 안강민 검증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검증위원장과 악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왼쪽)가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경선 후보 검증청문회를 마친 뒤 안강민 검증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李캠프 “朴 전 대표 무슨 말 할까”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검증청문회가 열린 19일 오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캠프의 조해진 공보특보(왼쪽), 진수희 공동대변인(왼쪽에서 두 번째) 등 실무진이 박근혜 전 대표의 답변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김동주 기자
李캠프 “朴 전 대표 무슨 말 할까”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검증청문회가 열린 19일 오전 이명박 전 서울시장 캠프의 조해진 공보특보(왼쪽), 진수희 공동대변인(왼쪽에서 두 번째) 등 실무진이 박근혜 전 대표의 답변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김동주 기자
○ 전두환 씨에게서 9억 원 수수설

―1979년 10·26사태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서 9억 원을 받아 이 중 3억 원을 김재규 사건 수사 격려금으로 되돌려줬나.

“6억 원을 받았다. 3억 원을 수사격려금으로 주지 않았다. 6억 원은 유자녀 생계비 명목이었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다 남은 돈이다. 아무 법적인 문제가 없으니까 생계도 막막하고 하니 이것을 생계비로 쓰라’고 전해줬다. 감사하게 받고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산을 안 남긴 걸로 아는데. 금고에서 나온 돈이라도 공금 아닌가.

“자세하게 그 내용을 모르지만 쓰다 남은 거고, 유자녀가 쓰는 데 문제없으므로 받으라고 해서, 저로서는 그때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 성북동 주택 취득 및 약혼설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이 1981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지어 줬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신 회장이 집을 짓게 된 경위는….

“부모님이 유일하게 남긴 재산인 서울 중구 신당동 집으로 동생들과 이사했다. 집이 좁아서 꼼짝 못했던 상황이었다. 이 사정을 알고 신 회장이 아버지와 인연이 있어서 도와 주겠다며 유품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했다.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결국 무상취득인가.

“네.”

―그럼 증여인데. 등기부등본은 왜 매매로 돼 있나. 증여세는 냈나.

“그때 법적인 문제는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해서 믿고 거기다 맡겼다.”

―구국봉사단, 육영재단 등 후보와 특별한 친분관계 같다. 약혼설도 나오는데….

“약혼설에 대해서는 신 회장에게도 물어봤다고 하던데 뭐라고 하던가. (‘그런 일이 없다더라’고 답변) 사실이 아닌데 국민이 생중계로 보고 있는 앞에서 약혼설까지 질문한다는 게 적절치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영남재단 이사장 시절, 경남기업이 학교 내 주요 건물 공사를 수의계약한 대가로 성북동 집을 받은 것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생활관을 짓기로 한 것은 이사장으로 취임하기도 전에 이사회에서 의결됐다. 또 경남기업뿐 아니라 4군데 이상의 건설업체가 영남대 건설을 맡았다.”

○ 최태민 목사 관련

―최 목사는 언제 처음 만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로 기억한다. 수많은 위로 편지와 전화를 받았다. 그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와 닿고, 만나서 얘기 듣고 싶을 때는 만났다. 그렇게 해서 만난 몇 분 중 한 분이다.”

―최 목사는 7개의 이름을 쓰고 5번 결혼했으며, 승려 생활했고, 성당에서 영세 받고, 목사로 활동했다는데 그런 경력을 알고 있었나.

“사람을 만나고 일할 때 이름 몇 번 바뀌었는지, 자식은 있는지 등은 모른다. 그런 내용은 몰랐다.”

―그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알고 만났나.

“목사로 알고 있었다.”

―후보 이름을 팔아 최 목사가 비리를 저질렀다는데. 또 청와대 무상출입이 이상해서 중앙정보부가 조사했다고 한다.

“청와대 무상출입은 불가능하다. 경호실 비서실에서 출입증을 받아서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확인을 한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아버지에게 이런 비리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서 보고를 올려서 아버지가 직접 조사를 한 걸로 기억한다.”

―당시 정보부 조사에 따르면 비리건수가 40건 정도 됐다고 한다. 그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중정부장이 아버지에게 보고해 다 불러서 직접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횡령했고 사기를 쳤나 보고를 하고 아버지가 묻자 답이 확실하고 그런 게 없었다. 실체가 없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만약 어떤 횡령이나 이권 개입이나 공천으로 부당한 짓을 했다면 아버지께 보고가 됐을 것이다. 엄격하신 분으로 이런 일에 대한 용서가 없었을 분이다. 그 의혹은 실체가 있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 목사와 관련되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꼭 최 목사가 이런 비리가 있다고 공격한 후 저와 연결해 이렇게 주변 사람이 나쁜 사람이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는 식으로 공격한다.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얘기도 있다. (최 목사와의 사이에) 애가 있다는 것인데 아무리 네거티브를 해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천벌받을 일 아닌가.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그 애를 데리고 와도 된다. DNA 검사라도 하겠다.”

―최 목사가 지금도 결백하고 모함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다고 알고 있다. 앞으로라도 실체 있는 게 나온다면 제가 몰랐던 일이니까 유감스럽고 잘못된 일이다.”

―선우연 박정희 전 대통령비서관이 월간조선 2005년 12월호에 비망록에 대해서 인터뷰한 기사가 있다. ‘지난 9월 12일 밤 박 전 대통령은 물의를 일으킨 최태민을 거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최태민을 거세하고 근혜와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라. 관련 단체를 해체하라’라고 적고 있다.

“거세를 하라는 표현을 썼는데, 대검도 있고 중정도 있는데 한 비서관에게 그런 지시를 했겠는가. 또 그후에 봉사단 활동은 더 넓어져서 정치활동, 봉사활동도 하고 신문에도 다 보도됐다. 선 비서관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 비망록 자체가 이상하다. 제 수필에도 썼지만 이렇게 인식이 변할 수 있는지, 배신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많은 비애를 느꼈다.”

―대통령이 돼도 최 목사 가족들과 계속 관계를 가질 것인가.

“(최 목사 사위인) 정윤회 비서는 능력이 있어 도와달라고 했고,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동생인 근령 씨의 생활비를 최 목사를 통해 받았다는 동생의 인터뷰가 있었다.

“처음 듣는 얘기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청문회 쟁점과 답변
검증 항목답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서 9억 원 수수설 9억 원을 받아 3억 원은 김재규 수사격려검으로 줬나6억 원을 유자녀 생계비 명목으로 받았다수사격려금은 주지 않았다
공금 아닌가 유자녀가 쓰는 데 문제없다고 했다
성북동 주택 취득 및 약혼설신기수 회장이 집을 지어준 경위는유품을 보관할 큰 집이 있다고 해 제의를 받아들였다
증여세를 냈나법적인 문제는 믿고 거기다 맡겼다
신 회장과의 약혼설은사실무근이다
최태민 목사 관련 만난 경위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다음 해에 위로 편지를 준 사람 중 하나였다
7개 이름을 쓰고 5번 결혼한 경력을 알고 있었나목사로 알고 있었다. 그런 내용은 몰랐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최태민 비리를 조사했다는데 실체 있었다면 아버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가 그냥 덮어두지 않았을 것이다. 실체 없는 의혹이다
최 목사와의 사이에 자녀 있다는 소문 이런 네거티브는 천벌 받을 일이다.애가 있다면 DNA 검사라도 해 주겠다
생활비 제공설 처음 듣는 얘기다

○ 육영재단 관련 의혹

―후보는 1982년 10월부터 1990년10월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취임하게 된 경위는….

“재단 관계자들이 (나에게) 이사장직을 맡아주길 건의했고 나도 어머니가 남긴 재단이 잘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

―이사장직에서는 어떻게 퇴임했나.

“1988년부터는 부모님 기념사업회도 같이했다. 저는 기념사업회에 몰두하겠다는 생각에 동생(근령 씨)에게 이사장을 맡아 하겠느냐고 말했더니 동생도 하고 싶어 해서 동생이 육영재단을 맡게 된 것이다.”

―최태민 목사와 딸인 최순실 씨가 박 후보와의 친분을 내세워 육영재단의 운영에 관여해 전횡을 일삼았고 재단직원들이 이에 반발해 박 후보가 이사장을 그만두었다는 의혹이 있는데….

“당시 꿈나라와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를 발간했는데 적자가 나고 해서 폐간했다. 이 때문에 재정압박을 받아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의 소요도 있었다. 당시 기념사업회를 최 목사가 돕고 있었다. 나의 사무실에서 만나서 기념사업회 관련 이야기를 나눴는데 오해가 있어 최 목사 물러가라고 데모를 했다. 순전히 오해고 최순실, 최태민 씨가 재단 일에 관여한 적이 없다.”

―동생 근령 씨와 갈등이 있어서 이사장직을 그만뒀다는 얘기도 있다.

“(갈등 조장을 위해) 급조된 단체도 있었고, 형제 간 이간을 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동생하고 큰 불화가 있거나 문제 있는 것은 아니다.”

―1990년 10월호 가정조선 보도에서 새 이사장이 된 근령 씨는 ‘물러날 사람은 언니가 아니라 최태민이다’라고 했다. 후보가 재단을 그만둔 것은 최 목사 때문이 아닌가.

“소요가 있었던 것과 내가 물러난 것은 다르다. 여동생은 재단 운영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일부 직원이 소요를 일으킨 것에 대해 내용을 잘 모르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1990년 어린이회관 정문 앞에서 숭모회라는 단체가 주축이 되어 최 목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농성을 한 적이 있는데 알고 있나.

“오해일 수 있다. 숭모회 자체가 목적을 갖고 급조된 단체로 알고 있다. 좋게 말하면 오해를 갖고, 달리 말하면 의도를 갖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87년 9월 어린이회관 직원들이 농성을 했다. 그때도 최 목사가 거론됐다. 어린이회관 직원들도 의도를 가졌다고 생각하나.

“직원이 농성했을 때는 자신들이 물러나게 된 것이 (최 목사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한 것일 수 있다.”

―최 목사의 자녀들이 강남에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데 육영재단과 관련해 취득한 재산이 아닌가.

“천부당만부당하다. 말이 안 된다. 육영재단은 개인사업체가 아니라 공익재단이다. 매년 감사를 받고 감독청의 감사를 받는다. 단 한 푼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정윤회 씨를 입법보조원으로 두었는데 최태민 씨 사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대구 달성에 출마했을 때 정 씨가 돕겠다고 해서 순수하게 도와준 것이다. 그래서 인연이 돼 입법보조원으로 도와준 것이다. 지금은 관계가 없다.”

○ 사생활

―일반 국민 중에는 자식을 낳아보지 못한 분이 어떻게 육아를 아느냐는 시각도 있다.

“결혼을 하고 싶었다. 결혼을 안 한 사람이 어떻게 결혼 생활을 아느냐, 이런 것은 미혼에 대한 편견이자 모독일 수도 있다.”

―경선 과정에서 네거티브로 반사이익을 얻으려하는 측면도 있는데….

“네거티브로 반사이익을 얻으려 한 적 없다. 네거티브를 많이 받았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게 네거티브인데 없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한 것이 아니다. 정책이나 언론 보도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이 전부였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긴급조치 해제를 요청한 적 있나.

“당시 아버지가 유신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수석비서관에게 지시했고, 물러날 준비를 했고 식사 중에도 다음 대통령은 누가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 문제는 해제됐을 것이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

―5·16에 대한 역사인식은….

“5·16은 구국혁명이었다. 그때 상황은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남북 대치 상황에서 잘못하면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혁명 공약에도 보면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국민을 구제하고, 이렇게 되어 있다. 구국을 위한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유신체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아버지가 한 일이 공과가 있는데 공도 너그럽게 인정하고 과도 너그럽게 봐주는 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 영남대 관련

―29세 때 영남대 이사장이 되었는데 경위는….

“영남학원이 설립될 때 아버지가 지원을 많이 해줬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니까 이효상 이사장이 ‘유족이 이사로 참여해야 한다’고 해서 맡게 됐다.”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은 당시 영남대의 부정입학 등 비리와 관련해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속칭 ‘4인방’의 책임론을 제기했는데….

“엄연히 김 전 총장의 책임이다. 자꾸 누구를 임명하라고 하고 이러는 것은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에 보고조차 받은 바 없다.”

―박 후보가 영남대 재단 이사가 된 지 1년 후에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1조에 ‘교주(校主) 박정희’라는 규정이 삽입된 경위는….

“당시 재단이사 한 분이 정관에 그런 내용을 넣자고 해서 이사회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 저도 이사회에 참석했고 찬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당 대통령 후보로서 대화합 차원에서 영남대 재단에 (전신인 대구대와 청구대) 유족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라고 말할 의향은 없나.

“영남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처지가 아니다. 유족들이 문제 제기를 하려면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에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유족들이) 이 전 회장에게 맡아 달라고 해 키운 것을 이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아버지가 관여하게 된 것으로 (유족들과) 저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

―영남대는 부정입학이 있을 정도로 재단 형편이 나빴는데,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후보와 관련 있는 육영재단에 기부금을 출연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런 기부금 출연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제가 그 당시에는 그런 점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청문위원이 지적한 말도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청문회 쟁점과 답변
검증 항목답변
육영재단이사장 취임 및 퇴임 경위재단 관계자들이 건의해 취임, 부모님 기념사업회에 몰두하려고 여동생에게 맡겼다
최태민 목사 일가의 재산 착복 의혹 말도 안 된다. 육영재단은 공익재단으로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최 목사가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데나를 무능하다고 폄훼하기 위해 만든 의혹
최 목사 사위 정윤회 씨가 입법보조원이었는데대구 달성 출마 때 도왔고 지금은 관계없다
사생활애를 낳아 보지 못했는데 육아를 알겠나미혼에 대한 편견이자 모독일 수 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긴급조치 해제 요청했나아버지는 물러날 준비를 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공과5·16 역사 인식은 구국혁명이었다
유신체제는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영남대 관련 29세에 이사장 된 경위유족이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정관에 ‘교주 박정희’가 삽입된 경위 당시 재단이사 한 분이 넣자고 했고 이에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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