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이라도 해야 하나

  • 입력 2007년 6월 20일 0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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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체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때 이른 불볕더위 때문이 아니다.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여야 할 대통령이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을 조롱하고, 헌법기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듯한 언동(言動)을 밥 먹듯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제 6시간의 격론 끝에 다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을 지적하고 자제를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냉소와 조롱으로 일관했다. 공식 발표문에서 “선관위의 권위를 드높인 결정”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 “그러면 대통령의 입을 봉하라는 것이냐”라고 이죽거렸다. 또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하려고 한다”면서 곧 “한국의 민주주의, 법치주의가 아직 후진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평가포럼’ 연설로 선거 중립 의무 위반 판정을 받은 지 불과 11일 만에 같은 판정을 받았고, 재임중 네 차례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는데도 국민에게 미안해하는 기색조차 없다. 오히려 “한나라당도 ‘정권교체, 대선승리’를 외치는데 그것은 사전 선거운동이 아니냐”고 억지까지 부렸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과 정당의 주장을 동렬에 올려놓는 논리가 차라리 무지(無知) 탓이었으면 좋겠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다. 9명의 위원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추천한다. 선관위도 민주주의 원칙인 3권 분립에 따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대통령은 그런 선관위의 결정에 ‘후진정치’라는 대못을 박았다.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존재를 부인한 것과 같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헌법기관의 권능을 무시하고 조롱하면 헌법의 효력은 상실된다. 헌법 위에 서 있는 국가와 사회는 ‘아노미(공통의 가치나 규범을 상실한 혼돈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부터 헌법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 아노미가 깊어지면 ‘사회 해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헌법학 권위자인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는 “이젠 제도적으로 방법이 없다. 언론이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해 ‘저항권’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에 앞서 할 수만 있다면 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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