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서둘러 ‘오폭(誤爆)’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중국 전역은 반미(反美) 구호로 들끓었다. 베이징대에는 ‘중앙 영도자들은 모두 죽었는가’ ‘청나라 정부보다 못하다’라는 대자보가 나붙었고, 공산당 원로들까지 나서 “노인(마오쩌둥)이 있을 때 미국이 감히 이랬는가?”라며 당 지도부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다음 날 저녁 TV에 등장한 후진타오 부주석은 미국을 규탄하면서도 인민들에게 ‘안정’을 호소했다. 중국은 당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목을 매고 있었고, 이는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중국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1972년 2월 21일) 35주년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집중 재조명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는 현재의 중-미 관계를 ‘평온할 온(穩)’ 한 글자로 정리했다. 평온하면서도 듬직한 가운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뜻의 ‘온중유진(穩中有進)’이라고도 했다. 중국 지도부의 실용적 용미(用美)주의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중국은 요즘 일본과도 밀월 관계를 쌓아 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작년 9월 취임 이후 첫 방문국으로 중국을 찾자 ‘파빙지려(破氷之旅·얼음을 깨는 여행)’라고 대환영했다. 닉슨 방중 때 썼던 표현이다. 미국과 일본의 밀월은 말할 것도 없다. 엊그제 발표된 ‘아미티지 보고서’의 제목도 ‘미일 동맹: 2020 아시아 정책’이었다. 그럼 한국은 누구와 밀월 관계인가.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