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우브 “美대사·사령관은 전두환을 경멸했다”

  • 입력 2007년 2월 22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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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전두환ㆍ노태우가 군을 동원해 생긴 안보 공백 때문에 북한의 도발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일 뿐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미국 대사와 미국 정부가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 30년간 한미외교의 중심현장에 있었던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겸임교수) 전 美국무부 한국과장은 “79년 10ㆍ26이후 전두환 정권이 탄생할 때까지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었냐”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그는 22일자로 보도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 미대사가 퇴임 이후 쓴 책 제목 ‘엄청난 연루 의혹, 보잘것 없는 영향력(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을 거론하면서 “(이 제목은)미국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라며 “당시 대사나 존 위컴 주한 미군사령관 모두 12ㆍ12와 군부의 재등장, 권력 장악을 심각히 우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전두환은 (검열과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을 조작하면서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거처럼 선전했지만,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문사 고위간부들과 직접 만나고 친서도 보내면서 전두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실제로 대사와 위컴 사령관은 전두환을 매우 싫어했고 사실은 경멸했다. 위컴 사령관은 12ㆍ12 당시 전두환 등이 전방에서 군대를 빼돌리는 것에 대해 크게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한국인의 들쥐 근성’으로 알려진 위컴 발언의 본뜻은 전두환에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것”이라며 “전두환이 권력을 잡자 곧바로 줄을 서는 한국의 고위직들에 대해 배신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두환, DJ를 대미 협상용으로 이용”

그는 레이건 정부의 전두환 정권 지지에 대해 “당시 미국의 주관심사는 김대중의 구명이었다”며 “김대중을 사형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전두환을 외국지도자 중 가장 우선적으로 미국에 초청해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전두환은 이미 김대중을 사형시키지 않기로 결정하고서도 대미 협상용으로 김대중을 이용했던 것 같다고, 나중에 글라이스틴 대사가 회고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레이건은 박정희 식 종신독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전두환에게 대통령 단임 이후 물러나도록 독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미간 전시작전권 논란과 관련해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 측으로 넘어갈 것으로 본다”며 “시기는 아마도 2009~2012년중 마지막 연도로 조정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국정부는 북한을 너무 좋게 대해왔다”

그는 남북관계에 대해 “한국정부는 최근 북한을 너무 좋게 대해왔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남북한 화해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overselling)했다”며 “문제는 북한이다. 북한이 진지하게 한국과 협력했다면 부시 행정부도 절대로 대북 강경정책을 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최근 대북정책에 대해 “취임과 함께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무시하던 부시 대통령이 (최근)엄청나게 변했으며 개인적으로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며 “지난 2ㆍ13합의는 사실상 클린턴 행정부 당시 제네바 합의의 의미를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변화다”고 했다.

그는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어느 쪽에서 제안했느냐는 질문에는 “노 대통령의 이니셔티브였다”며 “FTA가 한·미관계와 한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노 대통령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너무 좋게 생각하거나 믿지 말되 미워도 말아야”

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 역사적으로 미국은 한국의 국익을 팽개쳐왔다’는 지적에 대해 “미국도 국익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을 너무 좋게 생각하거나 너무 믿지는 말아야겠지만, 너무 미워하지도 말아야 한다”며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국익이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스트라우브 전 한국과장은 1976년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과정 재학 중 국무부에 들어간 뒤 주한 미대사관 정무공사, 국무부 한국과장·일본과장, 정무차관 보좌관을 거치며 지난해 4월까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다듬어 왔다. 그는 올 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한미일 관계와 북한 문제를 주제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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