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윤 亞재단 부총재 “한국 대북지원 北核해체 방향으로”

  • 입력 200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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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 합의는 2002년 이전 상황, 아니 그때보다 더 불리한 상황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한국 일본을 비롯한 모든 관련국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와 우선순위가 있겠지만 어떤 결정도 전체의 큰 그림에서 벗어나 외따로 이뤄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의 선임보좌관으로 평양을 방문해 페리보고서를 작성했던 필립 윤 아시아재단 부총재는 14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베이징 합의의 성패를 가름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 한국 중국 일본 등 당사국들이 일관되고 지속 가능한 협력관계를 이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계 2세로 그동안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해 온 윤 부총재는 “베이징 합의를 크게 환영하지만 실제론 작은 스텝에 불과하며 앞으로 매우 긴 프로세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뭐라고 보나.

“북한과의 협상은 매우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핵 시설 동결과 핵 프로그램의 해체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해체의 정의가 뭔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등 모든 게 대단한 도전이 될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론 해결책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대북원조 문제를 어떻게 보나. 북한의 변화 동력(動力)을 살리기 위해 과감한 원조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과 대북 지렛대를 너무 일찍 놓아버리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서는데….

“전술적 결정이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모든 당사자들의 행동이 긴밀히 조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행동은 큰 퍼즐의 한 조각이 되어야 하며, 그것은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뭔지를 알아내고, 북한을 핵무장 해체라는 궁극적 목표로 이끌어갈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에 어떤 선택이 나은 것인지 나로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전체와 동떨어져서 외따로 결정해선 안 된다. 큰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길 바란다.”

―북한이 유연성을 보인 이유가 제재에 따른 경제적 압박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북한의 변화 이유는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 정황적 증거들을 보면 평양과 북-중 접경지역의 경제 상황은 지난 10년간에 비해 그나마 나은 것 같다. 북한이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느꼈고, 약간의 유연성을 보임으로써 한국 중국을 만족시키면 압력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또 언제나 상황 악화의 책임이 미국의 비합리적 태도 때문이라고 주장해 온 북한으로선 부시 행정부가 상당한 태도 변화를 보임에 따라 유연성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윤 부총재는 “제네바 합의, 페리 프로세스 등 그동안 북-미 협상을 돌아보면 핵 개발의 ‘지연’과 ‘일시적 동결’은 언제나 쉬웠고 완전한 해체는 언제나 어려웠다”며 “베이징 합의 이전의 대치 국면으로 돌아갈 가능성과 궁극적인 비핵화를 향해 전진할 가능성 모두가 열려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北, 맘에 안 들면 핵사찰 요원 또 쫓아낼 수도”▼

“북한이 맘에 들지 않으면 핵 사찰 요원을 또 쫓아낼 수 있습니다.”

러시아 군축 전문가 이반 사프란추크(사진) 모스크바 군사정보센터 소장은 15일 “북한이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 합의서의 허점을 이용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크렘린의 외교 안보 싱크탱크인 러시아 정책연구소 연구원 출신의 핵문제 전문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합의서를 어떻게 보나.

“앞문만 그려 넣고 뒷문을 공백으로 남겨둔 설계도처럼 허점이 많다. 성선설에 기초한 이 합의서는 북한의 변덕에 5개국이 놀아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을 보장할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이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이 가장 큰 협상은 어떤 것인가.

“4월 13일까지 진행될 북-미 수교회담, 북-일 관계 정상화 회담이 고비가 될 것이다. 북한이 얻어낼 것이 많다고 판단하는 양자 협상이다. 북한이 이들 국가와 상대하면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동원하면 충돌음도 커질 것이다.”

―같은 기간 한국이 중유 5만 t을 제공하기로 돼 있는데….

“1980년대 북한을 다뤘던 옛 소련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북한은 일단 협상 성과물이 보이면 요구 수준을 더 높여 소련 측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북한이 비슷한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협상에서 얻을 것이 중유 5만 t보다 많을 수 있다는 뜻인가.

“당연히 그럴 것이다. 북한이 양자 협상에서 얻을 것이 없거나 적다고 판단하면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것이다. 그럴 경우 2002년 12월처럼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감시 요원도 쫓아낼 수 있다.”

―허점을 보완할 대안은 없나.

“앞으로 진행될 협상에서 부속 합의서를 만들어 당사국의 약속 위반에 대한 책임을 별도로 정해야 한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와는 다른 벌칙이 필요하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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