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북한의 민생은 역병이 돌고 굶어 죽는 사람이 넘쳐나던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 직전을 연상하게 한다. 주민들은 ‘장사만이 살길’이라 생각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왔지만 국가의 각종 통제, 특히 여러 명목의 잡세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잡세만 없다면=주민들이 매월 내는 잡세는 보통 30가지 이상이 된다. 주로 ‘지원품’이란 명목으로 걷는 잡세는 그 종류와 명목이 실로 다양하다.
군인 영예군인 노병 지원비, 철도 도로 염전 발전소 양어장 염소우리 대학 또는 병원 건설 지원비, 3대혁명소조판정 식사비, 담장 도색 및 수리비, 경비비용, 청소 벌금, 충성의 자금을 위한 개가죽, 토끼가죽, 폐철, 폐지 헌납….
지원 형식은 대개 현물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집마다 그 많은 종류의 현물이 있을 리 없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보통 돈으로 대신한다. 염소우리 마대 지원처럼 100∼200원으로 해결되는 지원도 있지만 비료처럼 1만 원을 내야 하는 지원도 있다. 아파트에 살아도 어김없이 퇴비 2t을 내라고 한다. 돈을 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인민반장이 지원품을 걷기 위해 오면 주민들은 “이번엔 얼마짜리냐”고 묻는다. 주민들에게서 뜯은 돈은 몇 단계를 거치면서 거의 모두 ‘증발’된다.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도 좋은 일하기 운동, 군대 지원, 학교꾸리기, 겨울나기 같은 명목으로 각종 노역 부담을 져야 한다. 이 때문에 가난한 집 학생들은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빈번하다. 학부모들은 “무료교육이라고 말만 요란하지 월사금(수업료)을 받던 일제강점기가 훨씬 편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요즘 북한에서는 간부는 더하고 나눌 줄만 알면 된다는 말이 유행한다. 실례로 한 간부가 “기념비를 새로 짓자”고 제안하면 그 자리에서 머릿수에 맞춰 개인별 할당량이 정해진다. 한 사람당 돌 5개, 시멘트 2kg, 각목 2개…, 돌을 돈으로 대신 내면 운송비를 포함해서 500원 하는 식이다.
물론 실제 필요한 수량보다 터무니없이 부풀린 것이다. 돈을 안 내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검찰, 국가안전보위부 간부처럼 핵심 권력층에 속하는 간부들은 직접 장사를 하기도 한다. 사람을 사서 심부름만 시킨 뒤 모든 문제는 자기가 해결사로 나서 방패막이를 해 주는 식이다.
큰 권력이 없는 간부는 자기 관할 사항을 단속한다. 북한에는 영상기기 단속을 전문으로 하는 109호 상무, 무직 건달을 단속하는 512호 상무처럼 각종 숫자가 붙은 단속반부터 전기검열대, 석탄검열대, 전기단속반, 방송단속반, 자전거단속반, 시장단속반 등 각종 단속반이 난무한다. 물론 단속에 걸리면 뇌물을 내야 한다. 예를 들면 전기단속반은 아무 집에나 들어가 전기 검열한다고 트집을 잡다가 뇌물을 주면 ‘고맙다’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사하고 나온다.
윗기관이 아랫기관을 뜯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청진시는 지난해 12월 암흑의 도시가 됐다. 중앙 배전부가 검열을 나오자 흠을 잡히기 싫은 도 배전부가 시내 전체에 전기 공급을 중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원(경찰)에게 인분도 판다=이런 속에서도 주민들은 억척스럽게 장사에 매달린다. 장사 중단은 곧 죽음이니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한다.
지난해 11월 함경북도 보안국에서는 한 간부가 “인민들의 비료 생산에 동참하기 위해 다음 날 인분 한 양동이씩 들고 출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 날 어떻게 알았는지 보안국 정문 앞에는 인분을 담은 양동이를 놓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보안원들도 상관에게 질책을 듣기는 싫은지라 인분을 사들고 들어갔다.
북한에서 직장에 출근하면 평균 쌀 3kg 가격에 해당되는 3000원의 월급을 받는다. 이 때문에 장사를 하지 않고 월급만 받아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 북한 노동자의 절반 정도는 보통 공장에 월 1만 원 정도의 돈을 내고 출근부에 도장만 찍고 바로 개인적인 돈벌이에 나선다.
주성하 기자 김일성대 졸업·2001년 탈북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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