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북한, 어떻게 살고 있나]서민들, 못먹고 못산다

  • 입력 2007년 1월 1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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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보다 비싼 땔감… “아궁이가 이밥 먹는다” 북한 개성 시내에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손수레에 실은 나뭇단을 운반하고 있는 북한 주민. 북한에서는 ‘아궁이가 이밥(쌀밥)을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먹는 것 못지않게 땔감도 비싸다. 사진에서 보이는 나무 한 단 또는 석탄 10kg의 값은 대략 900∼1300원으로 쌀 1kg보다 비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쌀보다 비싼 땔감… “아궁이가 이밥 먹는다”
북한 개성 시내에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손수레에 실은 나뭇단을 운반하고 있는 북한 주민. 북한에서는 ‘아궁이가 이밥(쌀밥)을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먹는 것 못지않게 땔감도 비싸다. 사진에서 보이는 나무 한 단 또는 석탄 10kg의 값은 대략 900∼1300원으로 쌀 1kg보다 비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이 지난해 10월 9일 핵실험을 감행한 직후 국제사회는 전례 없이 강한 대북 제재에 나섰다. 그간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제공하던 식량 및 생필품도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대북 제재는 북한 지도층과 주민들 모두의 삶에 깊고 큰 영향을 끼쳤다. 주민들이 빈곤에 허덕이는데도 특권층은 주민들에게 가렴주구(苛斂誅求·세금을 무리하게 걷고 재물을 빼앗음)를 서슴지 않고 있다. 본보는 다각도의 취재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 이후 주민들과 극소수 상류층의 삶을 들여다봤다.》

2007년 북한의 민생은 역병이 돌고 굶어 죽는 사람이 넘쳐나던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 직전을 연상하게 한다. 주민들은 ‘장사만이 살길’이라 생각하며 억척스럽게 살아왔지만 국가의 각종 통제, 특히 여러 명목의 잡세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잡세만 없다면=주민들이 매월 내는 잡세는 보통 30가지 이상이 된다. 주로 ‘지원품’이란 명목으로 걷는 잡세는 그 종류와 명목이 실로 다양하다.

군인 영예군인 노병 지원비, 철도 도로 염전 발전소 양어장 염소우리 대학 또는 병원 건설 지원비, 3대혁명소조판정 식사비, 담장 도색 및 수리비, 경비비용, 청소 벌금, 충성의 자금을 위한 개가죽, 토끼가죽, 폐철, 폐지 헌납….

지원 형식은 대개 현물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집마다 그 많은 종류의 현물이 있을 리 없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보통 돈으로 대신한다. 염소우리 마대 지원처럼 100∼200원으로 해결되는 지원도 있지만 비료처럼 1만 원을 내야 하는 지원도 있다. 아파트에 살아도 어김없이 퇴비 2t을 내라고 한다. 돈을 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인민반장이 지원품을 걷기 위해 오면 주민들은 “이번엔 얼마짜리냐”고 묻는다. 주민들에게서 뜯은 돈은 몇 단계를 거치면서 거의 모두 ‘증발’된다.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도 좋은 일하기 운동, 군대 지원, 학교꾸리기, 겨울나기 같은 명목으로 각종 노역 부담을 져야 한다. 이 때문에 가난한 집 학생들은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빈번하다. 학부모들은 “무료교육이라고 말만 요란하지 월사금(수업료)을 받던 일제강점기가 훨씬 편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더하고 나눌 줄만 알면 간부=국가 지도층이 권력을 이용해 대외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며 돈벌이에 나서는 동안 중급 간부들은 온갖 명목으로 주민들에게서 뜯어내 살아간다. 최근에는 간부들에 대한 배급도 없어 통제를 멈추면 자신들이 굶게 된다. 간부들이 각종 불필요한 일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 북한에서는 간부는 더하고 나눌 줄만 알면 된다는 말이 유행한다. 실례로 한 간부가 “기념비를 새로 짓자”고 제안하면 그 자리에서 머릿수에 맞춰 개인별 할당량이 정해진다. 한 사람당 돌 5개, 시멘트 2kg, 각목 2개…, 돌을 돈으로 대신 내면 운송비를 포함해서 500원 하는 식이다.

물론 실제 필요한 수량보다 터무니없이 부풀린 것이다. 돈을 안 내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검찰, 국가안전보위부 간부처럼 핵심 권력층에 속하는 간부들은 직접 장사를 하기도 한다. 사람을 사서 심부름만 시킨 뒤 모든 문제는 자기가 해결사로 나서 방패막이를 해 주는 식이다.

큰 권력이 없는 간부는 자기 관할 사항을 단속한다. 북한에는 영상기기 단속을 전문으로 하는 109호 상무, 무직 건달을 단속하는 512호 상무처럼 각종 숫자가 붙은 단속반부터 전기검열대, 석탄검열대, 전기단속반, 방송단속반, 자전거단속반, 시장단속반 등 각종 단속반이 난무한다. 물론 단속에 걸리면 뇌물을 내야 한다. 예를 들면 전기단속반은 아무 집에나 들어가 전기 검열한다고 트집을 잡다가 뇌물을 주면 ‘고맙다’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사하고 나온다.

윗기관이 아랫기관을 뜯는 일도 끊이지 않는다. 청진시는 지난해 12월 암흑의 도시가 됐다. 중앙 배전부가 검열을 나오자 흠을 잡히기 싫은 도 배전부가 시내 전체에 전기 공급을 중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원(경찰)에게 인분도 판다=이런 속에서도 주민들은 억척스럽게 장사에 매달린다. 장사 중단은 곧 죽음이니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한다.

지난해 11월 함경북도 보안국에서는 한 간부가 “인민들의 비료 생산에 동참하기 위해 다음 날 인분 한 양동이씩 들고 출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 날 어떻게 알았는지 보안국 정문 앞에는 인분을 담은 양동이를 놓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보안원들도 상관에게 질책을 듣기는 싫은지라 인분을 사들고 들어갔다.

북한에서 직장에 출근하면 평균 쌀 3kg 가격에 해당되는 3000원의 월급을 받는다. 이 때문에 장사를 하지 않고 월급만 받아서는 절대로 살 수 없다. 북한 노동자의 절반 정도는 보통 공장에 월 1만 원 정도의 돈을 내고 출근부에 도장만 찍고 바로 개인적인 돈벌이에 나선다.

주성하 기자 김일성대 졸업·2001년 탈북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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