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위해 북핵 문제 안삼겠다?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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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사진) 통일부 장관이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이 다음 정부까지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개념 정립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함에 따라 정부의 대북 지원 방식에 변화가 예상된다.

이 장관은 지난해 12월 28일 첫 정례 브리핑에서도 “미래 지향적인 화해 협력의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개념과 운영 원칙을 새로 정립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동안 표명해 온 대북 지원의 원칙은 “인도주의와 동포애 차원에서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식량난 등으로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한 것으로 조건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인도적 지원인 경우에도 남측의 부담 능력, 국민 여론, 남북관계 개선 효과 등을 고려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앞으로의 대북 지원 원칙은?=정부 당국자는 3일 “이 장관의 발언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하면 다시 이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발로”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과거 쌀과 비료의 지원이 남북관계 경색을 풀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결국 남북문제는 인도주의 문제로부터 풀려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중단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선 인도적 지원이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는 판단하에 지원 원칙을 다시 세우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수해 때 긴급 구호로 지원한 것과 차관 형식으로 지원한 것 등의 성격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그런 뉘앙스였다. 인도적 지원엔 긴급 구호성 지원, 차관 형식의 지원, 개발 지원 등이 있으나 긴급 구호성 지원은 어떤 경우에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이 장관은 평소 ‘북한의 먹고사는 사정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인도적 대북 지원은 지속되어야 하는데 현재 북한 사정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지 않으냐’는 견해를 피력하면서 지난해 10월 핵실험 이후 수해복구 지원용 쌀 등 긴급 구호물자의 지원이 중단된 것에 아쉬움을 토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어떻게 지원해 왔나=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쌀과 비료다. 쌀은 10년 거치 20년 상환(연리 1%)의 차관 형태로 2000년 이후 매년 40만∼50만 t을 지원해 왔다. 운송비를 포함해 1359억∼1957억 원이 소요된 비용은 남북협력기금으로 충당했다.

이 같은 쌀 차관은 매년 남북경협추진위원회를 통해 북한의 식량생산계획을 듣고 부족분을 메워 주는 식으로 이뤄졌다.

반면 비료는 무상으로 지원해 왔다. 1999년 15만5000t을 지원한 이후 매년 30만∼35만 t을 북측에 제공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매년 1200억∼1300억 원.

지난해엔 북한의 조선적십자회중앙회 장재언 위원장이 대한적십자사 한완상 총재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에 응하는 형식으로 비료를 지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한나라당“李통일, 북 대남선전 책임자 같다”▼

한나라당은 3일 올해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북한과, 북한에 대해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동시에 비판했다.

정부가 북한의 내정간섭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북 지원을 주장하는 것은 본말전도라는 게 한나라당의 논리다.

이날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정형근 최고위원은 “북한이 신년사설을 통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겠다고 발표했는데도 정부는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북핵 실험이 실시된 지난해 10월 이후 전직 통일부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비밀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뒤 ‘북한이 한나라당이 정권을 못 잡도록 만반의 대책을 갖고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내심 북한의 (대선) 개입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재정 장관이 전날 신년사에서 “같은 민족으로서 북한의 빈곤에 대해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북한의 대남선전방송을 듣는 기분이다. 즉각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전여옥 최고위원은 “이 장관이 북한의 대남 선전부 책임자 같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 장관의 발언은 남한의 경제적 성과를 몽땅 북한에 갖다 바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친북사대주의자, 핵 포용 적화통일론자인 이 장관은 즉각 물러나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을 정략적으로 추진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재정 장관이 북한 빈곤에 대해 남한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파격적인 대북 지원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양창석 통일부 대변인은 전직 통일부 장관의 비밀 방북설과 관련해 “지난해 10월 이후 북한을 방문한 전직 통일부 장관은 박재규 경남대 총장뿐인데 박 총장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김 위원장을 만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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