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북한 몇시인가]김정일 이후 누가 권력잡나

  • 입력 2007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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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체제와 후계구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북한체제가 향후 10년 이내에 급변사태를 맞이할 것이며 새로운 리더십이 북한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급변사태 발생 시기와 관련해서는 15명 중 12명이 10년 안인 2017년 이전에 북한에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급변사태가 5∼10년 사이에 일어날 것이라고 답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핵 보유국의 지위를 추구하는 북한이 중국 등의 암묵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유지되더라도 5년 정도는 버틸 것으로 본다”며 “하지만 5년을 넘어 장기화될 경우 대내적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중국도 더는 북한을 돕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5년 이내에 급변사태 발생을 전망한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김 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국제적 압력에 직면한 북한 내부 권력이동 가능성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김정일 없는 북한?=국내 전문가 8명 중 6명(고유환, 김영수, 김창수, 정세현, 제성호, 허문영)과 외국학자 2명(켄 고스, 스인훙) 등 8명의 전문가는 급변사태 촉발의 계기로 ‘북한사회 내부의 불안정성 증대로 김정일의 실각 또는 김정일의 자연사’를 꼽았다.

또한 국내전문가 6명(김영수, 김창수, 조성렬, 정세현, 제성호, 허문영)과 외국전문가 3명(스즈키 노리유키, 장롄구이, 주펑) 등 9명은 급변사태가 어떤 형태로 일어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김정일의 실각, 사망, 암살 등 인적변화’를 꼽았다.

결국 당-정-군(黨-政-軍) 최고지도자로서의 김 위원장이 없는 북한체제는 곧바로 북한통치 시스템이 마비상태로 빠져드는 것은 물론 급변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전문가들도 동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켄 고스 미국 해군전략센터 국제리더십 연구팀장은 “김 위원장의 사망이나 권좌에서의 축출은 북한의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체제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사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스 팀장과 스인훙(時殷弘) 중국 런민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실각 등으로 촉발된 북한의 급변사태는 ‘북한 군부의 이반에 따른 내전’의 형태로 이어질 것으로 보았다.

또한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로브와 고스 팀장 등 미국 전문가 2명은 북한의 체제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압박에 의한 국제적 고립 심화’라고 답했다. 이 답변에는 중국의 장롄구이(張璉괴)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가 동의했고 국내 전문가 중에는 김창수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과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가 의견을 같이했다.

▽누가 북한을 이끌 것인가?=북한체제와 후계구도 조사에 응한 전문가 15명 중 13명이 2007년에는 북한이 후계구도를 가시화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중국학자 4명은 모두 올해 후계자가 떠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학자 중 유일하게 후계구도가 가시화될 것으로 본 전문가는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기획실장. 그는 “공개리에 후계자를 지명하지는 않겠지만 내부적으로 비공개리에 후계구도 구축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고스 팀장도 후계구도 가시화 가능성을 점쳤는데 “65세가 되는 김 위원장이 후계자를 지명해 차기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단합을 확실히 해두지 않을 경우 김 위원장 사망 시 분파주의가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전문가들 중 5명(김창수, 백학순, 정세현, 제성호, 허문영)은 3대 세습이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반면 고유환 교수, 조성렬 실장, 고스 팀장, 스즈키 노리유키(鈴木典幸) 일본 라디오프레스 이사, 장롄구이 교수가 김정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을 꼽았다. 그는 북한이 3대 세습에 실패한다 해도 중국을 등에 업은 제3의 정치세력이 김정남을 앞세워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 밖에 3대 세습이 불가능할 경우 중국을 등에 업은 제3의 정치세력의 부상을 꼽은 전문가도 3명 있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북경=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시게무라 日 교수 “김정일, 후계자 결정권 없어 보인다”

1970년대부터 북한을 주시해 온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 일본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교수는 “북한 지도 체제에 이미 모종의 변동이 생긴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 문제는 전혀 정해지지 않았다고 본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 위원장에게 결정할 힘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2001년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에서 불법 입국으로 붙잡혀 추방될 때까지만 해도 그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결정된 상태였다는 것이 시게무라 교수의 설명. 그러나 이 사건으로 백지화됐고 지난해 봄 북한 고위층에서는 둘째 아들인 김정철밖에 없다는 말이 나돌았으나 김 위원장은 “후계 문제를 논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이 과정을 보면 김 위원장이 후계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그는 분석했다.

시게무라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지도 체제 변동을 추측하게 하는 일은 북한 핵실험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북한은 10월 3일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앞으로(in the future)’라고 표현했다. 이는 곧바로는 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다. 그러나 10월 9일 핵실험을 강행했다. 조선중앙TV는 이 소식을 이날 두 번째 뉴스로, 노동신문은 이튿날 3면에 보도했다. 축하대회는 무려 11일 뒤에나 열렸다. 핵실험이 김 위원장의 일관된 의지대로 이뤄진 것이었다면 이렇게 우왕좌왕할 리가 없다.”

그는 “북한은 이미 김 위원장보다는 군부의 집단지도체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북한 군부는 6자회담에서 생산적인 합의를 이룰 생각도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확실한 것은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 제재를 푸는 대가로 영변 원자로 동결 등을 거론하는 것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다시 원자로를 가동하면 되기 때문이다. 핵개발에는 여러 시설, 여러 단계가 필요하고 북한은 도마뱀 꼬리 자르는 식으로 하나씩 내놓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 문제를 일괄 처리하려는 것이다.”

시게무라 교수는 그렇다고 북한이 전쟁 능력을 보유한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한 석유는 약 100만 t에 불과하다. 한국은 연간 1억2000만 t을 사용한다. 100만 t 중 60만 t 정도를 군사용으로 돌릴 수 있다. 이 분량으로는 전쟁이 어렵다. 적어도 1000만 t은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이 결심하면 북한은 곧 붕괴한다. 그러나 지금은 관심이 없다. 핵을 실용화할 단계, 즉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핵탄두를 만들려면 아직 멀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적어도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까지는 안전하다고 본다.”

시게무라 교수는 1979년부터 6년간 마이니치신문 서울 특파원으로 근무했고 1989년부터 5년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북-미 핵 협상에서 여러 국제적 특종을 보도한 한반도 전문가. 저서는 ‘북한의 외교전략’ ‘최신 북한 데이터북’ ‘외교패배’ ‘한반도 핵외교’ 등 다수.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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