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 3년 넘게 연구하고 결국 ‘침묵’ 택해

  • 입력 200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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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안경환(왼쪽) 위원장 등 인권위 위원들이 모여 북한 인권 문제를 주제로 전원회의를 열었다. 인권위는 이날 회의 후 북한 인권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안경환(왼쪽) 위원장 등 인권위 위원들이 모여 북한 인권 문제를 주제로 전원회의를 열었다. 인권위는 이날 회의 후 북한 인권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의견을 내놓으려고 4년 가까이 끌어왔나.”

11일 북한 지역의 인권침해행위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발표를 접한 인권단체와 탈북단체의 공통된 반응이다. 인권위의 이번 결정은 9월 처형당할 위기에 있는 북한 주민 손정남 씨를 구해 달라는 내용의 인권단체 진정에 대해 인권위가 “현실적으로 조사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며 각하했을 때 이미 일정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시간만 끌어 가장 쉬운 답을 내놓았다”는 비난을 듣지만 인권위에도 ‘북한 인권 문제’는 위원들 간 합의를 도출해 내지 못한 뜨거운 감자였다.》

최근까지 인권위 내부에서는 “북한 주민이 준(準)외국인 수준의 특수한 법적 지위를 갖는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전원위원회의 논의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전원위원 5명으로 구성된 북한인권특별위원회에서는 북한 인권과 관련된 20가지 쟁점에 대해 수개월간 논의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대상 아니다”=인권위는 이날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 표명’이란 A4용지 4장 분량의 보도자료에서 북한 인권의 범주를 △북한 주민의 인권 △북한 이탈주민(탈북자)의 인권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등 남북 간 인도주의적 사안과 관련된 인권 등 세 가지로 규정했다.

인권위는 이 중 가장 핵심인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근거로 조사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못 박은 것.

인권위법 4조는 법의 적용 범위를 ‘대한민국의 국민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북한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보고 있으나 국제법과 남북공동합의서에 따르면 타국(他國)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게 인권위의 결론이다. 북한이 독립국으로서 유엔에 가입한 데다 헌법4조가 평화통일의 원칙을 천명하고 남북합의서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남북관계를 ‘통일 과정의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한 점 등을 근거로 인권위법을 해석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평화통일 원칙 등을 고려해 ‘북한 주민의 인권’을 비켜간 인권위는 북한 인권과 관련해 다섯 가지 정책 방향만을 제시했다. △국제사회와 연대, 협력해야 한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사업을 지속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 인권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등 피상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에 그치는 것이었다.

▽오락가락 인권위=인권위는 2003년 4월 북한인권연구팀을 꾸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다.

이어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12일 위원 11명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전원위원회를 열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공식 의견을 마련해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당시 회의에서 위원장을 제외한 10명의 위원 가운데 8명이 의견 전달에 찬성했다.

국회는 올해 북한 인권 연구사업에 1억4800만 원을 배정해 인권위의 활동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올해 1월 북한인권특위가 구성됐다. 특위는 5월 북한 인권과 관련된 20가지 쟁점사항을 정리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20가지 쟁점사항을 보면 ‘북한의 공개처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는 어떤가’와 같이 북한 인권과 직접 관련 있는 항목이 포함됐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거론하는 것이 타당한가’, ‘인권위가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거론할 수 있는가’, ‘북한 인권을 거론하는 것이 한반도의 긴장을 초래하는가’, ‘국제 사회의 개입이 북한 인권 개선에 유용한가’, ‘유엔 인권위에서 보인 우리 정부의 태도는 적절했는가’와 같이 북한 인권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옳은지에 대한 논의가 주류를 이뤘다. 이 때문에 인권위 내부에서도 북한 인권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의견 표명에 찬성하는 위원은 지난해 12월 8일 국회에서 통과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북한 정부와 국제사회에 인권위의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경색될 것이라며 의견 표명 자체에 반대하는 위원도 있었다.

9월 25일 돌연 사퇴한 조영황 전 인권위원장도 북한 인권과 관련해 적정 수준에서 인권위의 견해를 발표하려 했으나 위원들 간의 의견 차가 심해 결국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올 2월, 5월 등으로 발표 일정을 계속 미룬 인권위는 북한인권특위 구성 1년여 만에 ‘불개입’이라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이 설 기자 snow@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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