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경남 진주산업대 총학생회와 한국국제회계학회가 연 이명박 전 서울시장 초청 특강. 학생회관 공연장을 가득 메운 400여 명의 학생들이 어느 순간 조용해진다.
이 전 시장이 대학 시절 군 입대했던 얘기를 하던 대목이었다. 가난한 고학생이 병은 나고, 치료비는 없어 ‘군대 가면 무상치료를 받겠지’ 하는 마음에 입대했으나 훈련소 신체검사 과정에서 그 병이 ‘적발’돼 쫓겨났다는….
“민간 병원에 갈 처지도 아니고…. 당시 구청에서 ‘무료 환자’증을 발급해 줘서 서울 시립병원에 갔더니 없는 사람이라고 사람 취급도 안 해요. 의사도 간호사도 알은 척도 안 하고 무조건 반말에다…. 차라리 치료를 안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해 뛰쳐나왔어요.”
희망을 전파하는 강연과 행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연 주제인 ‘청년의 꿈과 도전’이 젊은 학생들에게 공명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5일간 동행하는 동안 이 전 시장의 표정과 언행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 것은 ‘희망의 메신저’가 되겠다는 의지였다. ‘찬란하지 않은’ 과거를 딛고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것이다.
29일 저녁 서울 잠실롯데호텔에서 한양사이버대와 세종사이버대 총학생회 초청으로 열린 ‘희망의 리더십’이란 강연도 마찬가지.
“희망이 없으면 오늘의 고통을 이길 수 없다.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도전하세요. 도전하지 않는 꿈은 백일몽이지만 꿈을 꾸고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현실이 됩니다.”
중간에 강연이 끊겼다. 최근 빡빡한 일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전 시장은 손수건을 입에 대고 20초간 기침을 해대더니 간신히 음성을 추스른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뻥튀기 장사를 하며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이 전 시장의 얘기는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환경미화원을 했던 일, 현대건설 입사와 서울시장 재직 시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던 일화로 넘어갔다.
부지런함은 예나 지금이나
이 전 시장의 부지런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매일 오전 5시면 일어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집안의 트레드밀(러닝머신)에 오르는 일. 건강비법은 하루 ‘만보 채우기’다. 일 때문에 걷는 것을 제외하고 운동으로 걷는 것만 포함된다.
아침식사는 집에서 하는 경우가 드물다. 1주일에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찬이나 조찬 강연회가 잡혀 있기 때문이다. 조찬의 80%는 주로 지인들을 만나고 비공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29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100평 남짓한 ‘안국포럼’ 사무실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날은 특별한 외부 일정 없이 내방객들을 만나는 날. “눈도장이나 한번 찍으러 왔다”는 50대 여성, “미리 약속을 안 잡으면 아예 만날 수 없는 거유”라며 ‘기습’ 만남을 시도하는 60대 남성…. 이 전 시장과 안면이 있다는 한 사람은 “30초 인사만 드리면 된다”며 비서진에 ‘새치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20분 간격으로 이어진 면담은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불도저형 인간의 ‘짬’
이 전 시장은 어디서, 무엇으로 재충전할까. 28일 오후 2시 반 경남 진주의 진주산업대 초청 특강을 마친 이 전 시장의 승합차에 동승해 상경하면서 그토록 바쁘게 사는 대권주자의 활력 재충전 방법을 잠시 목격했다.
이 전 시장은 잠시 라디오 뉴스를 듣는 것 같더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잠에 빠진 것이다.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에 올려놓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미동도 없었다.
1시간가량 지나 잠에서 깬 이 전 시장은 덕유산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온 이 전 시장은 50대 아줌마 4명에게 둘러싸였다. 아줌마들은 이 전 시장의 팔짱을 끼면서 환호했다.
다시 차에 오른 이 전 시장은 또다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지만 ‘일 중독’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서울 톨게이트가 가까워지자 이 전 시장은 갑자기 생각난 듯 “박근혜 전 대표의 열차페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기자에게 묻는다. 박 전 대표가 이날 중국에서 발표한 열차페리 구상에 대한 시중의 반응이 궁금한 듯했다.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밝힌 바 있는 이 전 시장은 “다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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