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2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회담 재개를 위한 협상을 벌였지만 핵심 쟁점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했다. 3국 수석대표는 29일 다시 만나 협의를 계속할 방침이지만 회담의 전제조건을 둘러싼 북-미 간 힘겨루기가 팽팽한 것으로 보여 6자회담 재개 일정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양측이 서로의 의견을 모두 교환했기 때문에 29일 협의에서 전격적으로 회담일정을 잡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미간 힘겨루기=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이날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8시간여에 걸쳐 양자 및 3자 협의를 가졌다.
3국 대표들은 북한이 조기 이행할 북핵 폐기와 관련국들의 상응한 조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계좌 동결 해제 문제를 협의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양국의 시선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이날 “최근 6자회담을 둘러싼 추측성 보도가 잇따르고 있으나 미국이 요구하는 핵심은 북한의 핵시설 가동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약속 두 가지”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런 요구는 6자회담이 열리면 제시하겠다는 게 아니라 사전조율 과정에서 북한이 수용하겠다는 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6자회담 재개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없던 일처럼 여기고 백지상태로 무작정 협상에 임할 수는 없다”며 “미국은 12월 중순 회담 재개를 희망하지만 그 같은 요구조건에 사전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 회담 재개는 계속 미뤄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 부상은 BDA를 통한 대북 금융제재가 조속히 해소되어야 하며 핵실험을 통해 핵 무기 보유 사실을 입증한 만큼 북-미 관계 정상화와 관련된 조치 및 에너지 지원 약속이 선행돼야 핵 폐기에 나설 수 있다고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대표, “진심이라는 증거를 보여라”=힐 차관보는 중국의 시사 잡지 환추런우(環球人物)와의 인터뷰에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당연히 한반도 비핵화 문제부터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힐 차관보는 27일 베이징 도착 전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진심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하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핵보유국 자격으로 회담에 참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북한은 핵 국가가 아니고 우리는 북한을 핵 국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방침은 중국도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북한, “당당히 회담에 임하겠다”=김 부상은 28일 베이징 도착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핵실험을 통해 제재와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모든 방어적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당당한 지위에서 언제든 회담에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북-미 간 쟁점이 아주 많다”며 “자기의 춤 박자(拍子)를 소개하겠다는 힐 차관보의 친절한 초청으로 길을 나섰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지난달 말 “우리가 먼저 이런 댄스를 시작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회담 성사 전망이 밝다고는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듯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현재 제일 급한 일은 대화를 통해 6자회담을 가능한 한 조속히 재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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