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여야 합의하면 협의 용의”…실현 희박한 전제 달아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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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국회 국회 대정부 질문 첫날인 9일 오후 많은 의원이 본회의장에 나오지 않았다. 텅 비다시피 한 본회의장 풍경에 민생 국회라는 말이 무색하다. 대정부 질문은 14일까지 계속된다. 김경제 기자
텅 빈 국회 국회 대정부 질문 첫날인 9일 오후 많은 의원이 본회의장에 나오지 않았다. 텅 비다시피 한 본회의장 풍경에 민생 국회라는 말이 무색하다. 대정부 질문은 14일까지 계속된다. 김경제 기자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거국 또는 중립내각’ 구성을 주장한 데 대해 한명숙 국무총리와 청와대가 즉각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거국·중립내각 문제가 정치권의 또 다른 논란으로 등장했다.

얼핏 같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거국·중립내각을 둘러싼 청와대와 여야의 속내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관측이 많다.

▽청와대의 즉각 ‘호응’, 그 속내는=이날 국회에서 거국·중립내각 얘기가 나오자마자 청와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을 내놨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방개혁 및 사법개혁, 비정규직 법안,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여야가 합의 처리하고, 거국내각 구성 방식에 합의해 준다는 ‘전제 조건’하에 거국내각 구성을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거국내각을 이미 검토했으나 이런 전제조건들이 현실적으로 충족될 수 있겠느냐는 점 때문에 이 제안을 못했던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청와대부터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청와대의 이날 반응은 거국내각보다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국정사안이나 먼저 처리하라”는 메시지에 방점이 찍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엔 국정 파행의 책임이 청와대가 아니라 여야에 있다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향해서도 “청와대 탓만 하지 말라”는 반격의 날이 숨어 있다는 해석이다.

윤 대변인이 이날 “국회가 정쟁이나 대통령 흔들기만 하면서 주요 국정과제의 처리를 계속 방기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사학법 문제 때문에 주요 국정과제 처리가 국회에서 늦어져 국정이 표류했다”고 여야를 싸잡아 비판한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는 ‘거국내각 협의 가능’ 의사 표시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제안한 대연정과 맥이 닿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가 정계개편에 개입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야의 동상이몽=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하고 있는 여야의 속내도 제각각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다수는 향후 정계개편 논의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빠져 주길 바라고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볼 때 대통령이 끼면 통합신당이 성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거국내각 주장은 노 대통령을 열린우리당에서 떼어내려는 방편의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그 방법론에 있어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등 야당의 ‘국정운영 참여’를 전제로 한 거국내각 구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노 대통령의 탈당을 전제로 여야 인사가 함께 내각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정치인들이 빠진 채 여야가 추천하는 정치권 밖 인사들로 내각을 구성해 시급한 국가 현안을 챙겨 나가자는 주장이다. 이런 식의 거국내각을 통해 국정파탄의 책임을 야당에 분담시키겠다는 내심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날 “내각 구성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반발한 것도 청와대와 여당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의 거국내각 구상은 한마디로 현 정권의 총체적인 실정에 대한 책임을 야당과 나눔으로써 국정실패 책임론에서 비켜서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정파를 초월한 능력 있는 전문가들로 ‘대선 관리형’ 내각을 구성하라고 했지 언제 우리가 내각에 직간접적으로 발을 들여놓겠다고 했느냐”고 했고,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정실패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려는 면피용 꼼수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청와대의 제안을 일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서는 청와대의 거국·중립내각 구성 협의 용의 발표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전날 강재섭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노 대통령의 국정실패를 비판하며 중립형 관리 내각을 구성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거국·중립내각 구성 주장은 야당으로서는 임기말 대통령의 정치중립을 촉구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다. 이 점에서 청와대의 이날 즉각적인 ‘수용 협의’ 반응은 한나라당으로서는 향후 대정부 공세의 기제를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청와대가 한나라당의 ‘관리형 내각’ 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한나라당이 이를 거부할 경우 오히려 그 책임을 야당에 돌리려 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한나라당은 정종복 의원이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 촉구한 ‘비상안보내각’도 북한 핵실험 사태 이후 한나라당이 줄곧 요구해 온 것으로 여당이나 청와대가 말하는 거국내각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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