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더 버텨봤자 실익없어” 벼랑끝 선회

  • 입력 2006년 11월 1일 03시 03분


코멘트
지난해 6자회담 때의 미-북-중 미국과 중국,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고 6자회담을 이른 시간 내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제4차 6자회담 개최에 앞서 포즈를 취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왼쪽부터).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6자회담 때의 미-북-중 미국과 중국,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31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고 6자회담을 이른 시간 내에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제4차 6자회담 개최에 앞서 포즈를 취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왼쪽부터). 동아일보 자료 사진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돌파구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31일 북한과 미국, 중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6자회담 재개에 전격 합의한 것과 관련해 “북한이 회담에 복귀하는 데 어떤 조건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북한이 줄곧 미국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통한 대북 금융제재를 철회하지 않으면 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 온 것으로 볼 때 모종의 이면합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나온다. 한 당국자는 “회담 재개 날짜를 잡지 못한 것으로 볼 때 북-미 간에 최종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6자회담 복귀 배경=회담 재개의 돌파구가 마련됐다면 미국과 북한이 2차 핵실험 중단을 포함한 추가적인 상황 악화 중지와 BDA 은행 금융제재의 해제를 맞바꾸는 방안에 대해 어느 정도 교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북-미-중 회동에서는 미국이 합법적인 북한 자금에 대해서 동결을 해제하는 방안이 논의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2차 핵실험을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북한이 전격적으로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한 것은 핵실험 강행이라는 ‘최후의 카드’가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가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마지막 벼랑끝 전술을 사용했는데도 요지부동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미국의 태도에 대해 더는 상황 악화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결국 이 상태로 6자회담의 문마저 닫히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을 염려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회담 전망=지난해 11월 이후 1년 가까이 열리지 못하던 6자회담의 재개가 극적으로 합의됐지만 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북한은 핵 폐기를 논의하던 기존의 의제를 바꿔 이제는 북한과 미국과의 핵 군축 협상을 하자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핵실험을 해 핵보유국으로 행동하려는 북한과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지면 회담이 다시 열리더라도 진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피해 6자회담에 복귀한 북한의 의도는 핵 군축 협상을 하자는 것”이라며 “금융제재 이상의 것을 얻어내려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단호하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25일(현지 시간) 헤리티지 재단 초청 연설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비핵화 진전을 이룰 때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에 따른 제재는 유지하기로 이번 동북아 순방에서 6자회담 참가국들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혔고 6자회담 틀 안에서 북-미 간 양자회담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도 안보리 제재를 그대로 밀고 나가기엔 부담스러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선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완화시키며 시간을 벌기 위해 회담 복귀 의사를 밝혔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핵실험 당시 중국 측에 폭발 규모가 4kt(TNT 4000t 폭발 규모)이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지진파를 측정한 결과 핵실험 폭발 규모는 0.2∼0.8kt인 것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북한은 의도한 규모의 폭발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핵 기술을 발전시킬 때까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해 나가면서 시간을 벌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탕자쉬안(唐家璇)의 김정일 면담이 실마리=‘강(强) 대 강’의 대치 일변도로 흐르던 북-미 간의 대화가 재개될 수 있었던 것은 19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자격으로 방북했던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본격적으로 북-중-미 3자 회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시점은 탕 국무위원의 10월 19일 북한 방문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탕 국무위원을 면담한 자리에서 “미국이 괴롭히지 않는다면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고 먼저 6자회담에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