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책공대 62학번들 머리-눈썹 빠지며 핵개발”

  • 입력 2006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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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고립되고 경제는 파산상태에 처한 나라가 어떻게 핵개발을 추진해 왔고 미국은 왜 그것을 막지 못했나?”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사진)는 23일 북한의 오랜 핵개발 과정과 미국의 저지 노력을 다룬 장문의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김책공대 62학번의 희생=김책공대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핵개발 과정에서 방사능 오염으로 북한 이공계 두뇌들의 피해가 컸다. 특히 1962년에 입학한 사람들의 희생이 가장 컸다. 이들이 졸업할 즈음 김일성 주석이 원자력연구소 건설을 지시함에 따라 많은 젊은 과학도가 동원됐기 때문이다.

뉴스위크와 인터뷰를 한 탈북자는 자신은 이 연구소로 차출되지 않았지만 동기들 사이에선 “연구소로 가는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중에 만난 동기생들 중에는 머리가 빠지거나 눈썹이 없어지고, 끊임없이 코피를 흘리고 마주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허약해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휴가를 떠나면서 방사능으로 아이를 못 낳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경을 털어놓은 동기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한 사람이 쓰러지면 언제든 다른 사람을 데려다 쓰면 된다”는 식으로 과학자들을 핵 실험실에서 일벌처럼 희생시켰다.

▽IAEA 도서관까지 이용한 핵개발사=북한 핵개발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일본 교토(京都)제국대에서 화공학을 공부한 이승기(1996년 사망) 박사다. 북한은 ‘은둔의 왕국’으로 깊은 고립에 빠져 살았지만 핵개발에 있어서는 외부의 지원을 받았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개발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나라는 러시아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파키스탄 등 14개국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무의식중에 도왔다. 1974∼78년 오스트리아 빈의 IAEA 본부에 파견된 최학근 박사는 도서관에서 핵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지며 기술을 습득했다. 최 박사는 1986년 원자력공업부장이 돼 핵개발을 주도했다.

▽9·11테러 후 문제의 국방부 보고서=9·11테러 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를 수중에 넣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면서 핵무기를 생산할 능력이 있는 국가 중 테러단체들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를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명단에 오른 10여 개국 중 시리아와 리비아는 미국이 압박하면 핵을 포기할 나라로 분류됐다. 하지만 북한과 이란 이라크 3개국은 어떠한 압박에도 포기하지 않을 나라로 결론을 내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신뢰하게 됐다.

결국 이 국방부 보고서는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로 이어졌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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