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정부 북핵 고민]때릴수도… 달랠수도…美의 딜레마

  • 입력 2006년 10월 12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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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을 '응징'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에 연일 가속도가 붙고 강경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자신감의 이면에서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엄연한 현실과 불확실한 해결전망에 사이에 놓인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고민과 한숨도 깊어가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직후 전 세계적인 규탄의 공감대 속에서 부시 행정부가 그토록 바랐던 '공동전선'이 자연스레 형성되고 있지만, 동시에 한편에선 대북 직접협상에 나서라는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대북 제재 성공 확신 어렵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11일(현지시간) "강력한 군사 억지력을 정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실효성 있는 외교가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은 '아마 그럴 것'이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대답했다. 국무부나 백악관의 자신감과는 다른 태도다.

현재 미국 내에서 제기되는 부시 비판론 가운데는 "대북 압박정책이 김정일 위원장을 '생존을 위한 핵도박'으로 내몰았다"는 원인제공론도 포함돼 있다. 물론 그 같은 비판은 "북한이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은밀히 핵 프로그램을 추진해온 점을 도외시한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이라는 지적에 밀려 거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핵무장을 막지 못한 책임은 막중하다"는 비판에 대해선 부시 행정부도 '말발'이 딸리는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공화당의 한 인사는 "북한의 야욕이 근본원인이고 중국 한국 등 핵심 관련국들의 엇박자에도 큰 책임이 있다"며 "하지만 북한이 당연히 F학점을 받고 한국이 나쁜 학점을 받는다 해서 C 학점 이상을 받기 어려운 부시 행정부에게 위안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네오콘식 세계관이 초래한 제약'= 9·11사태 이후 외교정책 주도권을 장악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의 기본적인 대북 인식은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몰핀' 주사에 불과했다"는 말로 요약된다. 통증만 없앴을 뿐 병원(病源) 제거는 아예 외교목표에 들어있지도 않았다는 비판인 것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는 '일단 문제만 덮어주면 이런저런 선물을 안겨주겠다'며 봉합한 것으로 '철학 부재'의 산물이란 것이 이들의 인식이다.

북한이 2002년말부터 핵 프로그램을 노골화하자 딕 체니 부통령실은 "나쁜 행동은 보상하지 않는다는 철학과 원칙대로 북한을 다루라"는 협상원칙을 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자 협상 불가, 다자틀내 해결' 원칙은 철길처럼 한번 정해지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궤도가 됐다.

냉전 붕괴 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향한 일방적 기대와 '일방주의 비판'이란 모순관계도 부시 행정부의 운신을 제약했다. 이 같은 미국의 처지를 요제프 요페 독일 디차이트 편집장은 "1등 국가(primacy)이긴 하지만 세상을 주무를 정도의 압도적 1등(supremacy)은 아닌 처지가 미국을 괴롭힌다"고 표현했다.

▽'목소리는 높아도 옹색한 처지'= 부시 대통령은 11일 회견에서 과거 클린턴 행정부 때의 양자회담이 실패했음을 지적하며, 다자적 접근이 최선의 전략임을 확신한다고 재확인했다.

맨스필드 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사무국장은 "부시 행정부는 대화를 통해 핵무장을 폐기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어 직접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미국으로선 선택의 폭이 넓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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