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前대통령 “국민에 용서 구하고 포용정책 폐기해야”

  • 입력 2006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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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 핵실험 이후 대응방안과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즉각 포기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 핵실험 이후 대응방안과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즉각 포기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11일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용서를 안 할지라도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포용정책도 공식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본보 방형남,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8년 7개월 동안 포용정책을 펴면서 돈을 퍼줬고 북한이 그 돈으로 핵을 만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

―10일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6·25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6·25전쟁 다음으로 가장 큰 위기가 북한의 핵 실험이다. 정부는 늘 포용정책을 자랑해 왔는데 이제는 공식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엄청난 사안이지만 우선 사죄를 해야 한다. 북한을 너무 미화해 국민이 위기를 위기로 인식 못하게 한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핵실험을 한 이상 북한에 대한 물질적 지원은 완전히 끊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는 쌀 비료 등 인도적 지원까지 중지해야 한다. 우리가 개성공단과 금강산에 얼마나 퍼주었느냐. 북한이 만든 핵무기의 첫 표적은 우리다. 그 다음이 일본이다. 일본은 난리가 났는데 한국은 왜 이러나.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끌어안는다고 했지만 오히려 우리가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에 끌어안긴 것 아닌가. 그동안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국제회의 등에서) 기권한 것도 아주 잘못된 것이다.”

―미국 일각에서는 무력으로 북한을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미국은 속으로는 무력 공격을 통해 북한을 없애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무력사용은 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쓰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현재 상황에선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은 무력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할 것으로 본다.”

그는 대통령 재임 중이던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때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무력사용의도를 극력 저지한 뒷얘기를 소개하며 무력사용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미국은 동해에 항공모함 2척을 포함해 33척의 군함을 대기시켰다. 항공모함에서 비행기가 뜨면 10분 이내에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휴전선에 배치한 포는 1분 30초면 남한을 공격할 수 있다. 그러면 서울은 불바다가 된다. 20여 차례나 클린턴과 통화하며 ‘내가 한국군 총사령관이다. 65만 한국군 중 한 사람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명령하겠다. 미국 혼자서 한국에서 전쟁하겠다는 것이냐’며 강력히 반대했다. 그때 참모들에게 동족끼리 피를 흘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무력제재에 나설 경우에는 “국가 원로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 할 것”이라며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전직 대통령들로서 양국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긴밀히 협조하기로 약속했다”고 소개했다.

―북한의 핵실험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주변국들에 비해 정보수집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거의 모든 정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관계가 튼튼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연합사 해체 논의는 무기한 중단해야 한다. 어제도 노 대통령에게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내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하고 튼튼한 유대관계가 있으니까 외국의 정상들이 앞을 다투어 나를 만나러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핵문제는 핵무기의 크기에 관계없이 가능성이 있다는 상정하에 다뤄야 한다.”

그는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노 대통령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나 유일하게 ‘확실하게 미국과의 관계를 잘하겠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외교라인의 문책문제에 대해서는 “아랫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며 “(북핵문제는) 대통령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5억 달러를 주고 정상회담을 했는데 노 대통령은 그만한 돈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것도 얻을 게 없는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지 않겠나.”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한에 미군의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991년 한국과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우리는 비핵화 선언하면서 미국의 핵을 내보냈다. 그러나 북한은 끊임없이 핵개발에 몰두하면서 결국 핵실험까지 했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잘못한 것이다. 지난 일이지만 그때 결정은 북한을 너무 몰라 오판한 것이다. 북한은 모든 것을 걸고 수십 년 전부터 핵무기를 만드는 게 숙원이었다.” 미국의 핵은 남한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는 또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도 죽으나 사나 북한의 변하지 않는 목표”라며 “그런 사실도 모르고 ‘북한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나라가 참 걱정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무엇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고 보나.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확고히 하면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노력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에 새롭게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뭔가 하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될 것이다. 국민이 노 대통령을 믿지 못하고, 공무원들이 따르지 않고, 국제사회는 곧 그만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지 않는 게 좋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대해서도 초연해야 한다. 지금은 국민 절대 다수가 노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더 그렇다.”

―한나라당도 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권 교체를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대단히 불행한 사태에 처할 것이다. 국민이 북한의 정책에 물들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이렇게 만든 것이다. 야당은 야당답게 싸워야 한다. 과거 40석을 갖고도 엄청난 국민 지지를 받지 않았느냐. 안타까운 것은 요즘 정치인들 입에서 ‘애국심’이란 단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처럼 정치인에게 중요한 말이 어디 있느냐.”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판도는 어떻게 보나.

“그런 얘기는 안 한다. 다만 후보들이 경선 이후에 갈라서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갈라서지 않기 위해선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후보가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돼야 한다. 후보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지지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언론과의 갈등에 대해서는 “내 경우 언론과의 관계가 좋은 적도 있었고 불편한 적도 있었지만 언론의 지지가 없었다면 대통령이 못 됐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에 불법적으로 5억 달러를 송금한 것과 언론사 사주들을 구속시킨 것은 가장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정리=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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