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세계체제이론’ 창시자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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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라며 새로운 다극체제 도래에 대응할 것을 역설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 김동주 기자
1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라며 새로운 다극체제 도래에 대응할 것을 역설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 김동주 기자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세계적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76) 예일대 석좌교수가 바라보는 북한 핵실험 이후의 세계는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실험 강행을 발표한 9일 고려대 문과대 60주년 기념강연을 위해 부인과 함께 방한한 그는 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이어 동아일보와의 별도 인터뷰에서 “2015년이면 북한은 물론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20∼25개국이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20∼30년 내 한반도, 중국과 대만의 통일이 이뤄질 것이며 지역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동반자 관계가 훨씬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월러스틴 교수와의 일문일답.》

―당신은 2004년 한국에서 번역된 ‘미국 패권의 몰락’에서 9·11테러를 ‘베트남전쟁→1968년 혁명→베를린 장벽붕괴’의 뒤를 잇는 일련의 미국 헤게모니 소멸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도 미국 헤게모니 균열의 상징적 사건으로 볼 수 있는가.

“물론이다. 미국의 헤게모니 쇠퇴는 지난 30년간 꾸준히 이뤄졌으며 특히 지난 5년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이 한 일은 그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고 지난 5년간은 특히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막는 데 집중했다. 1972∼2000년에는 부분적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북한 이란 이라크가 핵무장에 나섰지만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철저히 실패했다. 북한은 이미 핵무장에 들어갔고 이란도 뒤따를 것이다. 일본과 중국을 포함해 2015년까지 20∼25개 국가가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핵 위기가 당장 동북아 핵무장 경쟁과 안보 불안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그것은 미국 헤게모니의 상실이 가져온 냉엄한 현실이다. 북한이 한 차례 더 핵실험을 한다면 일본과 한국, 대만도 핵개발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갖고 45년간 대치했지만 핵전쟁이 발발하지는 않았다.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작동해서다.”

―당신은 2004년 “10년 안에 남북한의 대타협 및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동맹이 이뤄져 미국의 쇠퇴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또 동북아에서 민족주의의 파고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그 전망이 여전히 유효한가.

“내 예측은 10∼12년 뒤라는 장기적 전망이다. 당장 남북관계의 경색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2주 전과 다르지만 앞으로 2년 뒤에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민족주의로 인해 한중일 관계가 경색된 것도 최근 2∼3년의 현상일 뿐이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일본의 새 총리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중국과 한국 방문을 통해 그런 우려가 많이 줄어들지 않았는가. 아베 신조 총리의 첫 방문지가 미국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이라는 점 자체가 변화하는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동북아 안보불안은 美 일방주의 쇠퇴 때문

지역패권 대립 불구 中-日 관계개선 불가피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직접적 영토 야욕이 없는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의 지역패권을 추진하는 중국에 다가서는 것을 현명한 전략으로 볼 수 있을까.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일의 경쟁구도다. 중국과 일본은 경제적 협력의 필요성과 미국 헤게모니의 공백을 대신해야 할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관계개선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양국 어느 쪽도 동북아 헤게모니의 두 번째 지위를 차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상당한 중재자(big broker)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쇠퇴할 것이란 당신의 장기전망은 옳을 수 있으나 ‘언제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호한 것 같다.

“5년 전 내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나는 미국이 패권을 상실한 뒤 중국과 같은 단일 국가가 그 헤게모니를 행사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5∼8개국이 이를 나눠 가지는 다극체제가 상당 기간 이어지면서 무정부 상태와 폭력이 발생할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 미래가 더 나아질지, 나빠질지에 대해서는 반반의 가능성으로 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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