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2004년 한국에서 번역된 ‘미국 패권의 몰락’에서 9·11테러를 ‘베트남전쟁→1968년 혁명→베를린 장벽붕괴’의 뒤를 잇는 일련의 미국 헤게모니 소멸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도 미국 헤게모니 균열의 상징적 사건으로 볼 수 있는가.
“물론이다. 미국의 헤게모니 쇠퇴는 지난 30년간 꾸준히 이뤄졌으며 특히 지난 5년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이 한 일은 그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고 지난 5년간은 특히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막는 데 집중했다. 1972∼2000년에는 부분적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북한 이란 이라크가 핵무장에 나섰지만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철저히 실패했다. 북한은 이미 핵무장에 들어갔고 이란도 뒤따를 것이다. 일본과 중국을 포함해 2015년까지 20∼25개 국가가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핵 위기가 당장 동북아 핵무장 경쟁과 안보 불안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그것은 미국 헤게모니의 상실이 가져온 냉엄한 현실이다. 북한이 한 차례 더 핵실험을 한다면 일본과 한국, 대만도 핵개발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갖고 45년간 대치했지만 핵전쟁이 발발하지는 않았다.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작동해서다.”
―당신은 2004년 “10년 안에 남북한의 대타협 및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동맹이 이뤄져 미국의 쇠퇴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또 동북아에서 민족주의의 파고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그 전망이 여전히 유효한가.
“내 예측은 10∼12년 뒤라는 장기적 전망이다. 당장 남북관계의 경색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2주 전과 다르지만 앞으로 2년 뒤에는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민족주의로 인해 한중일 관계가 경색된 것도 최근 2∼3년의 현상일 뿐이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일본의 새 총리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중국과 한국 방문을 통해 그런 우려가 많이 줄어들지 않았는가. 아베 신조 총리의 첫 방문지가 미국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이라는 점 자체가 변화하는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동북아 안보불안은 美 일방주의 쇠퇴 때문
지역패권 대립 불구 中-日 관계개선 불가피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직접적 영토 야욕이 없는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의 지역패권을 추진하는 중국에 다가서는 것을 현명한 전략으로 볼 수 있을까.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일의 경쟁구도다. 중국과 일본은 경제적 협력의 필요성과 미국 헤게모니의 공백을 대신해야 할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관계개선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양국 어느 쪽도 동북아 헤게모니의 두 번째 지위를 차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상당한 중재자(big broker)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쇠퇴할 것이란 당신의 장기전망은 옳을 수 있으나 ‘언제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호한 것 같다.
“5년 전 내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나는 미국이 패권을 상실한 뒤 중국과 같은 단일 국가가 그 헤게모니를 행사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5∼8개국이 이를 나눠 가지는 다극체제가 상당 기간 이어지면서 무정부 상태와 폭력이 발생할 것이다. 그것을 넘어서 미래가 더 나아질지, 나빠질지에 대해서는 반반의 가능성으로 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