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말을 잃다… ‘남북관계 후퇴’ 여당서도 책임론 공세

  • 입력 2006년 9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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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경색이 장기화되면서 이종석(사진) 통일부 장관이 말을 잃었다.

달변에 토론을 즐기는 이 장관이지만 매주 목요일 정례 기자브리핑에도 7월 20일 이후 6주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장관은 그동안 정례 브리핑 외에도 수시로 기자들과 만나 오프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남북관계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7월 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한 대응으로 쌀과 비료 대북 지원을 유보한 이후 남북관계가 한 발도 나가지 못하자 아예 입을 다물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을 비롯한 여론도 이 장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심지어는 지난달 24일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에 의해 간첩을 의미하는 ‘세작(細作)’에 비유되는 수모도 겪었다.

▽북한전문가 이 장관 취임 후 퇴보한 남북관계=취임 이후 남북관계에 성과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이 장관은 2월 취임사에서 △군사당국 간 회담 정례화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신뢰 구축 △경제협력 기반의 확실한 구축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4월과 7월 두 차례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렸지만 이 장관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전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이 장관에게 남북관계 단절의 책임이 있다고 보이는 대목.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한 것을 이 장관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무리한 장관급회담 강행과 성급한 쌀 및 비료 지원 유보 결정의 중심에는 이 장관이 있었다.

학자 시절부터 이 장관과 교류해 온 한 인사는 “자칭 당대 최고 북한전문가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함 탓에 교착 국면을 만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남북장관급회담에 함께 참석했던 한 인사는 “이 장관이 북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서 “이 장관이 지나치게 북한을 고려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도 북한에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적’이 많은 이 장관=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해 온 이 장관에게는 적이 많다.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임명된 뒤 줄곧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거센 비판을 받아 왔다.

한나라당 등 야당의 비판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도 이 장관을 공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전면적 개조가 필요하며 인적 대안도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접적으로 이 장관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든든한 후원자’=사면초가인 것처럼 보이는 이 장관에게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7월 25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가장 위협하고자 한 나라가 미국이라면 논리적으로 미국이 가장 실패한 것”이라고 말한 이 장관의 발언을 두둔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면 한국의 각료들은 국회에 가서 혼이 나야 하느냐”고 따졌다. 지난달 13일 일부 언론사 논설위원과의 간담회에서도 노 대통령은 “이 장관은 북한과 접촉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통로”라고도 했다.

외보안보부처 관계자들은 “이 장관의 힘은 현안이 생길 때마다 ‘내가 보기에 VIP(대통령)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라는 식의 어법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선 “호가호위(狐假虎威)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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