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입김에 ‘정부산하기관장 제청’ 유명무실

  • 입력 2006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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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무원들은 “장차관 값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는 자조 섞인 말을 자주 한다.

정책 결정은 물론 공무원이나 산하기관 고위직 인사에서 해당 부처 장관이나 차관의 영향력이 크게 낮아지고 청와대에 휘둘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한국은행을 ‘재무부 남대문출장소’라고 한 것에 빗대 정부중앙청사는 ‘청와대 세종로출장소’, 경제부처가 많은 정부과천청사는 ‘청와대 과천출장소’라는 말도 나온다.

최근 전격 경질된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산하기관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인사 압력’을 실명(實名)까지 들어 폭로한 뒤 행정부 및 산하기관 인사를 둘러싼 파행적 행태가 주목을 끌고 있다.

○ 장관의 유명무실한 제청권

현행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에 따르면 정부투자기관장은 사장추천위원회의 심사 및 추천을 거쳐 주무부처 장관이 대통령에게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별도의 관련법이 있는 기관은 그 법에 따른다.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진념, 전윤철 경제부총리 등 일부 각료는 상당한 제청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선 실질적 제청권을 행사한 장관이 극히 드물다고 관련 인사들은 증언한다.

지난해 5월 당시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공모를 통해 뽑은 한국조폐공사 신임 사장 후보 2명을 청와대에 올렸지만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결국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해성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신임 사장이 됐다.

다음 달 3일로 신동규 행장의 임기가 끝나는 한국수출입은행의 후임 행장 인사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주무장관인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14일부터 17일까지 여름휴가를 떠난다. 한 금융권 인사는 “어차피 청와대에서 알아서 결정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각 부처의 공무원 인사 역시 장차관이 소신 있게 하지 못하고 청와대 눈치를 봐야 한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장관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의 ‘인사 개입’이 과거보다 훨씬 심해졌다”며 “청와대의 요청으로 특정 인사를 후보자 명단에 포함시키는 일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 잇따르는 인사 물의

지난해 1월 출범한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이사장 선임 때 홍역을 앓았다. 당시 이사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3명의 후보가 갑자기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후보추천위원이던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청와대 인사에게서 청탁 전화를 받고 압력을 느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우여곡절 끝에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진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이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정부산하기관 감사 선임을 둘러싸고도 자주 물의를 빚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증권선물거래소 감사는 물론 상당수 산하기관의 감사 선임 때마다 여권에 줄을 댄 사람들의 ‘낙하산 인사’ 논란이 벌어졌고, 대부분 ‘보이지 않는 실세’들의 뜻대로 인사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단국대 오열근(행정학)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코드’에 따른 낙하산 인사가 과거 정부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이는 시스템보다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인사가 지나치게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 산하기관장 인사에서 낙하산 인사는 있을 수 없다”며 “시스템에 따른 인사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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