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보수 넘어설 제3의 길 과연 있는가? 두렵다”

  • 입력 2006년 8월 9일 1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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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세력의 선진화담론을 넘어선 ‘제3의 길’이 과연 있긴 한 겁니까.”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이 8일 뉴레프트를 표방하는 좋은정책포럼 주최 ‘민주정부의 위기와 진보 개혁 세력의 진로’ 토론회에서 한 회의적인 발언이다. 이날 서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노무현 정권 출범 후 각종 자문위원회에 몸을 담았던 진보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모였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의 잇단 선거 참패를 진보 세력 전체의 실패로 규정하고 ‘지속 가능한 진보’를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토론회에선 현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날선 비판이 오갔다. 그러나 진보 세력의 새 활로를 찾는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아, 진보세력의 현재 위기와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진보학자들 “노무현 정권 실패로 진보세력 전체 위기”▽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인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민심이 참여정부를 비롯한 진보 개혁 세력을 떠나간 이유는 보수꼴통 탓도 아니고, 언론 탓도 아니고 바로 참여정부에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발제자 임혁백 고려대 교수도 “국민은 2004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깨끗하나 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하나 유능하다고 믿는 보수를 선택했다”며 “노 대통령은 탈권위주의 정치개혁에 들어갔으나, 이는 대통령 권위의 상실까지 초래했다”고 말했다.

임혁백 교수 “국민은 부패하나 유능한 보수를 선택했다”

김호기 교수 “진보세력이 지속가능한 세계화 창출해야”

정해구 교수 “공중에 뜬 정부”

김부겸 의원 “보수 넘어설 제3의 길 과연 있는가? 두렵다”

박승옥시민발전 대표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 극복과 진보 이념의 재검토 필요”

노회찬 의원 “노무현 정부의 모순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에서 비롯”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참여정부가 스스로의 지지기반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공중에 뜬 정부’가 됐다”고 말했고,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진보세력이 세계화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세계화’의 담론을 창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집단이기주의의 상징인 노동운동 등 정치 과잉과 백화점식 시민운동도 문제”라며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 극복과 진보 이념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與의원 “제 3의 길 알려달라”▽

이 같은 비판에 여당 대표 토론자로 참석한 김부겸 의원은 “지난 선거에서 참패가 열린우리당의 참패 뿐만 아니라 진보 개혁 세력의 패배로 받아들여지는 데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면서 “패배의 원인은 민생 경제의 실패에 있는 것 같다.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양극화라는 세계적 흐름에 대해 무감각하게 국민들을 내 몰았다”고 분석했다.

김 의원은 “오늘 임 교수 등은 전 한나라당 의원인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선진화 담론을 넘어선 한국적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두렵고 자신이 없다”며 “신자유주의 흐름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도태된 사람을 돕는 전 세계적으로 확실한 모델이 정말로 있긴 한 건가 하는 두려움이 있다. 저희 집단 전체에 이런 고민에 빠져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최근 한나라당이 전당대회에서 보여준 우왕좌왕한 모습이다. 이제 보수세력에겐 박세일 류의 우아한 이론 무장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며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정말로 새로운 제3의 길이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이를 안고 가라는 과제를 던져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토론자인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모순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국회의 97%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대선과정에서 새로운 정치 지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 청중은 “한나라당과 수구세력을 없애기 위해 가장 제대로 된 정당 민노당이 열린우리당과 ‘국공합작’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노 의원은 “더 잘하라는 충고로 받아 들이겠다”고 대답했다.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인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부패하지만 유능한 보수라는 임 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더구나 무능정부는 한나라당의 선거 캠페인 용어”라면서 “열린우리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이익에 얼마나 부합하느냐를 고민해 확고한 지지계층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노무현 정권은 보수들의 시대를 끝장내 버렸다는 성과가 있다. 봉인을 따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다음 수습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다음 대선에서 보수세력이 집권한다 해도 우리가 우려했던 그런 보수와는 다를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했다.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시민사회 운동의 힘을 살리는 초심으로 돌아가 달라고 부탁한다”며 “아직 우군은 많다. 신자유주의를 헤쳐나갈 동력이 있다”고 말했다.

▽‘보수’ 송호근 “저널리즘 수준 토론 실망”▽

그러나 초청받은 토론자 중 유일한 ‘보수’인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구체적인 대안 제시를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이라며 “여기 오신 분들이 정말로 ‘진보 명망가’가 맞느냐”며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했다.

송 교수는 “대한민국의 진보 이론가가 여기 있는데, 원인 분석에 있어 ‘저널리즘’ 수준을 못 넘고 있다”며 “시간도 없고 운동적인 성향이 있어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3년 반 동안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만 짚어내 그것을 토론하길 바랐다. 대안을 말씀하실 때 원인 분석에 열거된 것을 뒤집는 수준인데, 동어 반복이지 뭔가”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딜레마는 취약한 통치 능력 부족에도 대북 자주노선과 분배정치를 모두 끌고 가려는 데 있다”며 “자주 노선을 선택했으면 분배 정치를 포기했어야 한다. 더구나 한국은 보수적인 납세자들이 사회적인 소득 이전에 지극히 혐오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분배 정치가 안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이념만 가지고 분배 정치가 되느냐, 청와대는 정책 홍보사이트에 ‘분배를 통한 성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세계 보편적 인식을 우리도 이제는 가질 때가 아닌가’라고 썼는데, 이게 말이 되냐”며 “98년 외환위기 사태와 같이 극단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를 제외하고는 복지가 늘어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대안을 내놓는다 해도 늦었다. 5.31 선거로 중앙 정부의 팔을 다 끊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경우에 진보 쪽으로 역사적인 노선을 틀어 지켜가는 것도 굉장히 큰일이다. 따라서 너무 성급하게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주제를 알라. 그래야 잠재적 지지자들이 늘어난다”고 충고했다.

이에 김호기 교수는 “송 교수의 말씀에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의 차이를 다시금 확인했다”며 “자주 노선과 분배정치가 선택의 문제는 아니다. 역사에 있어 정치적 비전을 가진 집합적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고, 임혁백 교수는 “대안을 제시 못해 죄송하다”며 “앞으로 좋은정책포럼의 과제로 남겨야 할 것 같다”고 마무리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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