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일 정권 ‘자존심’이 주민 목숨보다 중요한가

  • 입력 2006년 7월 2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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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달 중순 집중호우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이재민들에게 긴급 구호식량을 지원하겠다는 세계식량계획(WFP)의 제의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재민에게 식량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주민의 안위보다 알량한 자존심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한반도 전역을 때린 ‘물 폭탄’의 피해는 북한이 훨씬 심각하다. 경제난으로 평소 치산치수(治山治水)가 안 된 탓이다. 벌써 이재민만 수만 명에 이르고 사망·실종자는 3000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올해 83만 t의 식량이 부족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주민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을 판이다.

북한이 어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11자회담 참가를 거부한 것도 무책임의 극치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이 백남순 북한 외무상을 1시간 반 동안이나 설득했지만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북한 이재민을 위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도 더 어렵게 됐다. 회담 거부로 ‘왕따’가 된 북한을 어느 나라인들 흔쾌히 돕고 싶겠는가. 김 위원장은 자신의 자존심과 수십만 주민의 목숨을 맞바꾼 셈이다.

북한이 빠진 10자회담에서 참가국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목소리를 촉구하고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는 대북 제재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정지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도 최대의 피해자는 북한 주민들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고, “선군(先軍)으로 남한을 지켜주겠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돈 주고 식량 주며 달래기에 바쁜 우리 정부를 상대하면서 구걸보다 협박이 효과적임을 체득한 탓이다.

자칫하면 우리마저 국제사회로부터 동류(同類) 취급을 받아 ‘왕따’를 당할 지경이다. 이 참담한 현실을 이 정권 사람들은 아직도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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