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예전엔 ‘한미간 공조 긴밀’ 요즘은 ‘외교적 표현 그만’

  • 입력 2006년 7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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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미 행정부 내에서 지한파(知韓派)이자 6자회담의 파국을 막기 위해 애써 온 협상파로 통한다.

그러나 그가 20일(현지 시간) 상원 청문회, 21일 외신기자 회견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언급한 걸 보면 그동안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노련한 외교관이자 협상가인 힐 차관보조차 ‘한미 간 정책공조는 긴밀하며, 생각의 차이가 없다는 식의 수사(修辭)에 더는 연연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는 말이 워싱턴 외교가에 퍼져 있다.

21일 외신기자 회견 말미에 ‘한국 자금이 경협사업을 이유로 북한에 계속 전달되는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개성공단 임금이 미사일 개발에 쓰일지 모른다’는 미 의회의 우려를 감안한 물음이었다.

이에 대해 힐 차관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문 가운데 ‘한국이 맡아야 할 몫’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개성공단 임금 지급은 유엔 결의문 이행의무의 문제라는 뜻이었다.

15일 통과된 대북제재 결의문에는 ‘유엔 회원국은 북한의 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사용될 자금의 차단에 노력한다’고 명시돼 있다.

힐 차관보의 대답은 ‘결의문에 따라 한국은 북한에 현금 제공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가 20일 상원 청문회에서 한 말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한국에서는 지금처럼 북한을 포용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느냐, 아니면 엄격한 상호주의를 요구해야 하느냐는 흥미로운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논쟁의 흐름 가운데) 지금의 흐름은 대북 관계를 옥죄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런 논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견을 한국 정부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시종 진지한 말투로 이어진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쏘더라도 북한에 ‘현찰’을 건네는 한국의 대북 경협사업을 더는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힐 차관보의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 비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29일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비공개-비보도를 전제로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을 때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의 (대북지원) 발표가 6자회담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직설적인 경고였다. 한 일본 언론이 몇 가지 부정확한 사실과 함께 이 발언을 소개하는 바람에 ‘언론의 작문(作文)’쯤으로 치부되고 말았지만,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당시 힐 차관보의 직설법에 적잖이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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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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