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만우]‘논공행상’ 인사 이제는 정리해야

  • 입력 2006년 5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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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정부기관 행정과 공기업 경영의 책임을 맡을 적절한 인물을 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라는 말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부적절한 인사가 일으킨 인재(人災) 때문에 곤욕을 치러 왔다. 대통령 만들기에 순수한 열정으로 앞장섰다가 당선 이후 본연의 생업에 돌아가 조용히 지켜보는 순수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활약을 침소봉대해 떠벌리고 다니면서 권력과 재물을 노리는 소인배도 널려 있다.

노태우 정권 말기였던 1991년 5월은 분신자살이 줄을 잇고 돌멩이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혼란의 극치였다. 대학 캠퍼스에는 사방에 분향소가 설치됐고 향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 혼란기에 30대 중반의 교수이던 필자는 대학 건물 입구에 차려 놓은 분향소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학생회와 충돌해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당시 학생운동에 비판적이던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방송토론 출연 요청까지 받았다. 그러나 교내에서는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쇠파이프를 든 학생들이 둘러싼 가운데 학생회의 성토집회가 계속됐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서도 필자를 옹호하고 나서는 학생들도 있었다. 조교들의 전언에 의하면 한 학생이 결사적으로 학생회 측에 대항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필자의 회계원리 과목을 수강 중인 1학년생 김모 군이었다. 보름 동안이나 끌어오던 일촉즉발의 위기는 정원식 총리가 한국외국어대에서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일거에 반전돼 끝나 버렸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김 군을 가까이 지켜보게 됐다. 여러 가지로 훌륭한 학생이어서 기뻤고, 인연이 깊어져 군복무 중일 때 면회를 가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김 군은 스승의 날을 맞아 동기생들과 연구실로 찾아왔다. 저녁을 같이 하면서 술이 상당히 오간 다음 김 군에게 당시 도와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처음으로 꺼냈다. 순간 김 군은 당황하면서 그것은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쉽사리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김 군으로서는 ‘선생이 자기를 아끼는 것이 그때 그 일 때문이었구나’ 생각하고 실망한 것이다. 당황하는 김 군에게 “자네를 좋아한 것은 꼭 그 일 때문이 아니라 사제 간 의리로 좋아한 것”이라며 “그렇다고 선생에게 그런 일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면 되느냐”고 나무랐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시 그 일을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을 뽑고 나면 공신들의 등급 매기기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런 과정에서 소외 계층이 생기고 이들은 자신의 입을 ‘폭탄’에 비유하면서 협박을 개시한다. 삐친 사람을 달래기 위해 위무 사절이 달려가고 결국은 벼슬 한 자리가 돌아가게 된다. ‘논공행상’형 인사로 공기업 사장이나 돈 많은 단체의 회장에 취임하면 십중팔구는 퍼주기, 널널해지기, 줄 세우기를 일삼아 조직을 만신창이로 만든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철도공사 이철 사장은 선임 당시에는 이름에 ‘철’자가 들어가 철도공사 사장이냐는 등 비아냥 소리를 들었지만 불법파업에 단호히 대처하는 결단성을 보여 주었다. 적절한 인사를 선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기적 평가에 의해 부적합한 인사를 가려내 적기에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공신만큼 전과자가 될 확률이 높은 자리도 없다. 정권이 바뀌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던 공신 순으로 교도소 독방을 차지하게 되고, 그것도 한번에 끝나지 않고 ‘앙코르 수감’이 뒤따른다. 공신을 일찍 권력에서 떼어 놓는 것은 이들의 교도소행을 막아 주는 선행이다.

최근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과 민정수석비서관이 고시 출신의 40대로 바뀌었다. 이들은 지난 대선 때의 일들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일 전임자에게서 채용 후보 리스트를 받았다면 이를 기피자 리스트로 활용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저질러 놓은 ‘논공행상’형 인사들의 근무 상황을 점검해 부적합한 인사들은 조기에 정리하는 활약을 기대한다면 과욕일까?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은 자신들이 퇴임 후가 더 빛나는 대통령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의 핵심 자리에 최적의 인재를 채워 놓고 물러나는 깨끗한 정권은 이들 젊은 수석의 손에 달려 있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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