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석연]개헌카드로 大選 판 깰 생각은 말라

  • 입력 2006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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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3·1절 골프 향연은 도덕성으로 포장된 현 정권의 국정 수행 능력의 한계를 보여 줬다. 다가오는 5·31지방선거는 이변이 없는 한 야권의 압승이 예상된다. 그 와중에 이미 국정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은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가속화될 것이다. 이제 국민 최대의 관심사는 내년 하반기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모아지고 있다. 국민 상당수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 못지않게 과연 내년 대선이 헌법이 정한 정치 일정대로 치러지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금 같은 민심이반이 지속될 경우 차기 대선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집권 세력이 개헌을 통해 직선 대통령제를 폐지하거나 변질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권 세력 내부에서 간헐적으로 나오는 개헌 띄우기가 이에 무게를 더해 주고 있다. 개헌 카드를 통한 국면 전환은 두 가지로 예상할 수 있다. 하나는 정계 개편을 통한 통치 구조의 변경으로, 내각제 또는 대통령 간선제의 도입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헌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대통령은 내 손으로’라는 국민의 현실적 여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 관계의 변화를 계기로 한 연방제 도입 등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변동을 불러오는 개헌 가능성이다. 영토 조항 개헌론이나 6월 이후로 연기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이와 연계하려는 견해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의 영토 조항(제3조)은 우리 헌법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언젠가는 북한 지역까지 우리 영토로 통합하도록 하는 미래지향적인 규정이다. 통일은 잠재적 통치권이 미치는 한반도 이북에 대한 영토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를 휴전선 이남으로 한정하려는 개헌론은 수도를 남쪽으로 옮기려는 시도처럼 위축된 역사관을 보여 주는 퇴영적 사고를 드러낸다.

또한 헌법은 대한민국의 통일은 반드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즉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질서에 의해 달성돼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제4조). 이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헌법을 개정할 때도 손댈 수 없는 규정이다(통설). 통일이 자유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자유민주주의가 통일의 희생물이 될 수는 없다. 이는 우리 헌법의 확고한 의지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감상적 민족주의를 이용한 대북 카드로 개헌을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는 발상은 이제 거두어야 한다. 최근의 여론 조사를 보면 국민의 관심 순위에서 통일 문제는 한참 뒤로 밀려나 있다.

물론 헌법은 그것이 규율하는 정치 사회 생활의 변화에 따라 규범력이 약해지면 개정해야 한다. 1987년 개정 이후 20년 가까이 역대 최장수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현행 헌법 역시 그 운용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 개헌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개헌이 시급한 것은 아니다. 개헌 문제는 차기 정부로 미루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만약 현 정부에서 개헌을 한다면 그 시기는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가 적기이다. 통치 구조에서는 임기 4년의 대통령 중임제와 부통령제 도입에 대해 이미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현 시점에서 개헌의 필요성은 무엇보다도 대통령, 국회의원 및 지방선거가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실시되는 데서 오는 국정 운용의 비효율성, 비집중성 및 비책임성 등 이른바 3비(非) 현상을 시정하는 데 있다. 그러려면 현 정부의 임기 보장을 전제로 개정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2007년 12월에 동시에 실시하고, 차기 지방선거는 2009년 12월에 실시해 중간평가 역할을 하도록 헌법 부칙을 통해 임기 조항을 조정해야 한다. 임기 조항의 조정을 위한 개헌은 이번이 적기로서, 이러한 내용의 개헌은 무난히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개헌을 둘러싼 각종 풍문을 불식하고 정치 일정의 안정적 추진이라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개헌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도 헌법 개정안 제안권자의 한 축인 대통령의 책무가 아닌가 한다. 어떠한 정치 세력도 개헌의 불확실성을 조장해 다가오는 대선을 좌우하거나 판을 깨겠다는 정략적 발상은 버리기 바란다.

이석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헌법포럼 상임대표 stonepon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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