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北문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 입력 2006년 3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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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미국 뉴욕 맨해튼 45번가 유엔 주재 미국대표부가 입주해 있는 대형 빌딩 앞.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한국과 일본 취재진 40여 명이 아침 일찍부터 건물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미국과 북한 당국자가 위조지폐 문제를 논의하는 ‘뉴욕 접촉’이 미국대표부에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갑자기 몰려들자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학살’을 규탄하던 ‘1인 시위대’가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수많은 기자들이 방송카메라까지 들고 모여든 것을 보고 뉴요커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일부는 취재진에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요”라며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묻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나 유명 인사가 나오는 줄로 착각하고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든 채 한참을 기다리다 “북한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허탈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부 뉴요커는 회담 의제를 묻기도 했다. “북한 정부의 위폐 제조 및 유통 의혹을 논의한다”는 말을 듣자 “설마 정부가…”라며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물론 양측의 주장은 엇갈린다. 미국은 북한이 정부 차원에서 위폐 제조 및 유통에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은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일국의 정부가 위폐 제조 및 유통에 연루됐다는 ‘혐의’만으로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나 있을 법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들렸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곳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이기 때문이다.

또 위폐 의혹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최대 변수로 등장했다는 점도 냉엄한 현실로 다가왔다. 이날 이근(李根)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도 “지금처럼 ‘압박’(위폐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금융제재)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6자)회담에 나갈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위폐 문제의 해결 없이는 6자회담 재개가 어려울 전망이고, 결국 북핵 문제 해결도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했다는 한 일본 기자는 “북한과 관련한 문제는 10년이 지나도 항상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10년 뒤에도 녹화 테이프를 틀어 놓은 것처럼 같은 장면이 되풀이될까. 그러지 않기를 기대하며 취재에 나서지만 자신이 없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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