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 누가 이들의 손을 잡아 줄것인가

  • 입력 2006년 1월 3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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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8일 추석을 맞아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을 찾은 탈북 청소년들이 철길 위에 서서 북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제공 하늘샘터
지난해 9월 18일 추석을 맞아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을 찾은 탈북 청소년들이 철길 위에 서서 북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제공 하늘샘터
지난해 3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 2학년으로 편입한 김혜경(가명·18) 양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김 양을 교무실로 부른 담임선생님은 김 양에게 A4 용지 한 뭉치를 던져주며 “북한에서 있었던 일과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일을 진술하라”고 요구했던 것.

2004년 입국 당시 열흘 동안 독방에서 생활하며 정부 합동조사기관에서 입국 경위에 대한 조사를 수차례 받아 ‘진술’이라면 진저리가 나는 김 양은 한 장도 다 채우지 못한 채 울먹이며 교무실을 떠났다.

결국 지난해 9월 학교를 자퇴한 김 양은 “한국에서는 평생 열등생의 딱지를 벗을 수 없을 것 같다”며 “한국에 온 게 너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학교를 떠나는 탈북 청소년들=통일부에 따르면 2005년 현재 한국에 온 탈북 학생은 연령 범위를 6∼24세로 다소 크게 잡을 경우 모두 1887명. 1999년 33명에 불과했던 탈북 청소년 입국자는 2004년에는 531명, 지난해 368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중 초중고교 취학 대상자인 탈북 청소년 987명 가운데 지난해 8월 말 현재 재학생은 432명으로 43.7%에 그쳤다. 특히 2001∼2005년 8월 탈북 청소년 중 중학생은 14.1%, 고등학생 15.2%가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4년 한국 전체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중도탈락률 0.7%, 1.3%에 비해 각각 20배와 11배 높은 수치다.

탈북 관련 단체들은 이들 중 상당수가 탈북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따른 부적응으로 학교를 떠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2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새터민(탈북자) 198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새터민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학교생활을 하는 경우’가 48%, ‘학교에서 새터민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2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손놓고 있는 정부, 외로운 탈북 청소년들=문제는 이처럼 학교를 떠난 탈북 청소년 중 상당수가 알코올 의존증이나 게임 중독으로 대인기피 증세나 우울증을 보이고 있다는 점.

2001년 한국에 온 김영길(가명·22) 씨는 PC방에서 사흘 동안 끼니도 거른 채 온라인게임을 한 뒤 다시 사흘간 집에서 잠만 자는 생활을 2년째 반복하고 있다.

김 씨는 ‘탈북 청소년 특례입학’으로 대학까지 들어갔으나 말투와 외모 등에서 새터민임을 알아챈 학우들의 차별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휴학을 몇 차례 반복하다 현재는 학업을 포기한 상태다.

그러나 탈북 청소년들의 사회적응 교육은 통일부 하나원 ‘하나둘학교’에서 받는 3개월 교육이 전부다. 하나둘학교에서 받는 한국사회 이해, 진로지도 상담 등 기본적인 교육으로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역부족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들에 대한 책임을 일선 학교나 민간단체에만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전국의 194개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탈북 청소년은 432명으로 한 학교에 2, 3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들만을 위한 정책을 세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소년개발원 길은배(吉殷培) 연구위원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탈북 청소년에 대한 대책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정부 차원에서 탈북 청소년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다양한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적 갈등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대안학교 포함 21곳 대부분 재정난 허덕▼

2005년 8월 현재 취학대상 탈북 청소년 987명 중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학생은 절반이 넘는 555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의 민간 보호시설과 대안학교 중 통일부에 등록된 곳은 각각 9개와 12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이들 민간단체는 넉넉지 않은 재정 형편으로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별도의 사회적응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교사자격증을 가진 교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곳이 상당수다.

이 때문에 설사 이들 시설이 탈북 청소년들을 받아들인다 해도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하고 ‘수용’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거의 전무한 상태. 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해 시도 교육청을 통해 탈북 청소년 관련 8개 단체에 1500만∼2800만 원씩 지원했지만 한시적인 특별교부금으로 예산을 편성해 올해에도 지원이 계속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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