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對北정책을 엉뚱한 곳에서 듣는다

  • 입력 2006년 1월 25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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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및 유통 의혹에 관한 미국과의 협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관련한 주요 결정사항을 숨기다가 각각 미국 정부와 여당 의원에 의해 공개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지나친 ‘북한 눈치 보기’라는 지적과 함께 한미 간 인식차가 심각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美 “北당국이 불법금융활동 주범”

주한 미국대사관은 대니얼 글레이저 미국 재무부 ‘테러단체 자금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가 23일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이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주범과 그들을 돕는 지원망을 재정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더욱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고 24일 밝혔다.

미 대사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북한의 불법 활동을 포함한 전 세계적 금융 위협을 금융기관에 경고하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을 설명하고 한국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미 대사관은 이어 글레이저 부차관보가 “북한 정부 주도의 불법 금융활동과 더불어 돈세탁, 테러단체 자금조달, 기타 금융범죄 단속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한국 정부와) 집중 논의했다”고 밝혀 북한 당국이 불법 활동의 ‘주범’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 측과 협의를 가진 23일은 물론 미 대사관이 관련 내용을 밝힌 24일에도 미국과의 협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23일 스위스 언론에 따르면 스위스의 세계적인 은행인 크레디 스위스 그룹은 북한과 이란, 시리아와 신규 거래를 불허하며 만기 도래 후 거래 갱신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들 세 나라는 미국 행정부에 의해 ‘불량국가(Rogue State)’로 분류된 국가들이다. 이를 두고 북한 등에 대한 국제적 금융 압박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 작년말 PSI협력 확대 결정

PSI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북한 등을 겨냥한 PSI 활동에 대한 협력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기존의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을지포커스렌즈에서 WMD 차단훈련을 실시해온 데 이어 △역내외 WMD 차단훈련에 참관단 파견 △PSI 회의 결과 브리핑 청취 등을 추가로 실시하기로 하고 10일 미 정부에 이를 공식 통보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지 않다가 24일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이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에서 먼저 밝힌 뒤에야 뒤늦게 시인했다.

PSI 문제와 대북 금융제재 등은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안이어서 앞으로 북핵 6자회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육상 해상 공중에서 핵과 생화학 무기, 미사일 등 WMD 관련 물질 및 부품을 불법 수송하는 선박 차량 항공기 등을 검문검색을 통해 차단하자는 구상. 미국의 주도로 전 세계 70여 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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