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 위폐 의혹에 ‘국선변호사’로 나선 정부

  • 입력 2005년 12월 21일 03시 02분


코멘트
미국 국무부는 16일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현황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설명회를 열었지만 이번에도 우리 정부 당국자는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다. “정황 증거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북한이 위조달러를 만들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없다는 뜻”이라는 부연까지 했다. 정부가 북한을 두둔하는 ‘국선(國選)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꼴이다.

북의 위폐 제조 혐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이를 조사해 온 미 정부가 한국 중국 홍콩 호주 싱가포르 태국 관계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연 것은 그만한 확신과 증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폐 제조 등 범죄활동을 통한 수입이 북한 총 수출액의 35∼40%를 차지하며 이 돈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 판단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설명회 내용을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김정일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역력해 보인다. 위폐 제조와 유통은 테러 마약 조직범죄와 함께 국제사회가 공동 대처해야 할 문제다. 더욱이 정권 차원의 위폐 제조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말처럼 ‘아돌프 히틀러 나치정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이자 한미동맹의 일원인 한국이 이를 비호한다면 국제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볼지 두렵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이 먼저이므로 북을 자극할 수 있는 사안들은 가능한 한 거론하지 말았으면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범죄행위는 당당하게 책임을 묻되, 남북관계 개선은 흔들림 없이 추구해 나가는 이원적 접근이 논리적, 전략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정부가 자꾸 감싸고 도니까 북은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핵 위협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북은 그제도 “흑연감속로에 기초한 자립적 핵동력 공업을 적극 발전시킬 것”이라고 위협했다. 어설픈 대북 유화정책이 북한의 버릇만 나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정권의 정략적, 편의적 북한 편들기가 거꾸로 남북관계 개선을 지연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