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2006정부예산안]<下>정부부처 “일단 받고 보자”

  • 입력 2005년 11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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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자세히 뜯어보면 국민의 세금이 줄줄 새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산감시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본보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실의 예산검토 보고서를 중심으로 정부의 내년 예산 및 기금운영 계획안을 분석한 결과다.

특히 부실한 계획에 사업성 미흡, 중복지원, 과잉투자처럼 매년 지적되는 잘못이 내년 예산안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최인욱(崔寅煜) 예산감시국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곳에 예산이 낭비되는 일만 없어도 세금을 올리지 않고 얼마든지 재정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꼭 나랏돈으로 지원해야 하나

산업자원부는 내년에 대한석유협회에 국고에서 11억 원을 지원해 주겠다고 예산안을 짰다. 산유국과의 협력관계를 다지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문제는 수혜단체가 연간 수천억 원대 이상의 이익을 내는 기업들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회원사 중 SK㈜는 지난해 17조4060억 원의 매출에 순이익만 1조6410억 원을 올렸고 GS칼텍스도 846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예결특위 검토보고서는 “국고 지원 자체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나라 곳간에서 이런 대기업들의 협회에까지 지원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취지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국고 지원이 어울리지 않는 사례도 지적됐다.

문화재청은 민간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를 지원하기 위해 2004년 1억 원, 2005년 11억5700만 원에 이어 내년에 8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내셔널트러스트사업이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 및 문화자산을 확보하여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의)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총사업비를 보면 △2004년 90.9% △2005년 89.3% △2006년 53.3∼80%(계획)가 정부 지원금이다. 민간의 고유 사업이 나랏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검토보고서는 “이를 진정한 의미의 내셔널트러스트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 △산업자원부의 유류카드제 관련 예산(5억 원) △보건복지부의 기피 전문과목 수련의 보조수당(16억8400만 원) 등도 국고로 지원하기에 부적절한 사업으로 전면 재검토하거나 지원금액을 깎아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 딴 부처가 개발 사업에 중복 투자

문화관광부는 문화콘텐츠 식별체계를 구축한다면서 내년 예산안에 16억 원을 배정했다. 각 문화콘텐츠에 고유번호를 붙여 전 유통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보통신부가 2003∼2005년 총 38억3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디지털콘텐츠 식별체계 개발을 이미 끝냈다는 점. 이 체계는 우수성을 인정받아 콘텐츠유통국제표준화기구에서 국제표준으로도 채택됐다.

예결특위 검토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문화부가 별도의 콘텐츠 식별체계를 구축 운영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고 중복 투자로 인한 예산낭비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보화 사업도 대표적인 중복 예산 종목으로 꼽힌다.

2006년도 예산안 중 △행정자치부의 ‘정보화마을 사업’(77억8400만 원) △농림부의 ‘디지털 사랑방 사업’(3억 원) △해양수산부의 ‘어촌정보 사랑방 사업’(9500만 원)은 지원대상, 사업 방법, 사업 내용은 물론 사업 명칭마저 비슷하다.

각 사업이 모두 도시와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영세 농어촌 마을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 주고 전자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구축해 준다는 내용들이다.

○ 무조건식 증액 요청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해 이미 따놓은 예산의 절반도 못 쓰면서 오히려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더 늘려 달라고 요청하는 사례도 고쳐지지 않았다.

해양부가 편성한 항만 개발의 일부 공사가 이 범주에 포함됐다.

광양항 서쪽에 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의 경우 설계가 늦어져 2005년 예산 74억 원 가운데 19억9100만 원(26.9%)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내년으로 넘어갈 형편이다. 그런데도 내년에는 올해의 4배나 되는 300억 원을 달라고 요청했다.

부산 신항 다목적 배후지 사업도 마찬가지. 불법어업시설 철거 등이 늦어져 2004년과 2005년에 배정된 예산 가운데 집행된 것은 9월 말 현재 85억6200만 원(29%)에 불과하다. 내년 예산 요청액은 올해 예산 50억 원의 2배인 100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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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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