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웃을 訴請심사]심사위원 전원 공무원…제식구 봐주기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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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심사위원회가 파면이나 해임 등 중징계를 받은 공무원의 징계 수위를 낮춰 준 사유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적지 않다.

금품 수수, 뺑소니 교통사고 등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범죄를 저질러도 인간관계상 청탁을 거절하기 힘들었거나 성실히 근무했다는 이유로 봐줬다.

소청을 청구한 공무원은 경찰관이 85%가량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철도청(대부분 불법파업 관련) 직원, 교정직 공무원이었다.

▽성실근무와 인간관계가 경감 사유?=심사위원들이 가장 많이 제시하는 징계 경감 사유는 표창과 성실 근무.

올해 상관에게 향응과 함께 성 접대를 한 혐의로 해임된 경찰관 A 씨는 22년여 동안 35회의 표창을 받고 징계 없이 성실히 근무했다는 이유로 징계 수위가 정직 3개월로 바뀌었다.

다른 경찰관 B 씨는 경제적인 도움을 미끼로 유부녀와 10년간 성관계를 가져 온 사실이 드러나 역시 해임됐지만 26년간 근무하며 16차례 표창을 받고 성실하게 근무해 온 점이 참작돼 복직됐다.

경찰의 경우 1, 2년에 한 번은 표창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표창 종류가 다양하다.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 역시 연간 1만 건에 이를 정도.

공무원 경력이 10∼20년 정도이면 대부분 한두 번은 표창을 받으므로 이를 근거로 징계내용을 완화하면 모든 비리 공무원의 징계 수위를 낮출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소청 청구인 가운데 표창 수상 경력이 없는 공무원은 거의 없다고 소청관계자는 밝혔다.

지난해 사건 청탁과 함께 1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적발된 경찰관은 “선배 경찰관의 부탁을 인간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 참작돼 해임 처분이 정직으로 내려갔다.

2002년에 10여 차례에 걸쳐 도박을 한 혐의로 해임된 경찰관 역시 “동료 및 다른 공무원과 도박을 했지만 상습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징계가 정직 3개월로 바뀌었다.

▽음주운전 및 뺑소니에도 관대=지난해 소청심사위 자료를 보면 음주운전 사고를 내 징계를 받은 공무원의 65.1%가 소청 절차를 통해 징계 정도가 약해졌다.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로 입건된 뒤 해임된 경찰관 C 씨는 사고가 크지 않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점이 받아들여져 다시 경찰관 옷을 입게 됐다.

검찰과 법원은 뺑소니 교통사고를 엄격히 처벌하려 하지만 소청 심사에서는 징계를 경감하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올해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달아났던 경찰관 D 씨는 도주 후 2시간 뒤에 자수했다는 점을 고려해 해임 처분이 정직 3개월로 바뀌었다.

또 근무시간 중 직장을 이탈해 술을 마신 뒤 차를 몰다 사고를 낸 경찰관은 친구 문상을 갔다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징계를 경감받았다.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도 많이 작용한다. 지난해 258만 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교정직 공무원은 편의 제공을 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징계가 낮아졌다.

돈을 받고 음주 운전자를 묵인해 준 경찰관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이 “뇌물이 아닌 감사와 격려의 표시로 보인다”고 판단해 복직할 수 있었다.

올해 민원인과 성관계를 맺었다가 그만 사귀려고 폭행과 협박을 했던 경찰관은 “관계를 정리하려고 다각적인 노력을 했다”는 이유로 해임이 정직 3개월로 바뀌었다.

▽개선책은 없나=소청심사위의 이런 결정은 고질적 비리의 경우 가급적 당초 징계처분을 유지하되 적극적 직무수행과정에서 발생한 불이익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관용을 베푼다는 소청심사 처리방침과 배치된다.

공무원 징계가 소청심사위를 거치면서 ‘솜방망이’로 바뀌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공무원들이 같은 공무원을 심사하기 때문이라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국가공무원의 소청심사를 맡는 심사위원 5명(위원장 포함)이 모두 공무원이어서 냉정하게 처리하기 힘들다는 것.

교원이나 군인 등 특정직 공무원과 시도별로 소청심사위원회가 설치된 지방의 경우 이런 ‘봐주기’가 더 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이달곤(李達坤) 교수는 “예전에는 공무원이 박봉과 격무에 시달렸기 때문에 ‘제 식구 감싸기’가 어느 정도 용인됐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며 “심사위원의 구성방식이나 감경 기준, 절차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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