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연정론과 ‘대통령 노릇’

  • 입력 2005년 7월 8일 03시 06분


코멘트
“연정(聯政)으로 앞으로 국무총리가 되신다면서요.”

“나 같은 사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걸. 그러려면 내 안에서 먼저 개조돼야 하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서신(書信)을 통해 연정에 관해 언급한 5일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과 민주노동당 의원인 심상정 원내수석부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우연히 만나 나눈 농담성 대화이다.

대통령의 연정 발언에 대한 정당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평소 당정(黨政) 운영에 관해 여러 갈래의 목소리를 내던 열린우리당은 이번만큼은 일제히 대통령 ‘엄호사격’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은 비난을 하면서도 애써 무시하려는 듯한 태도이다.

정부 여당이 연정을 꾀할 경우 파트너가 될 공산이 높은 민주당과 민노당은 행여 오해를 살까봐 조심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서로 상대 당이 여당과 더 가까운 사이라고 주장하는 묘한 신경전까지 벌인다.

민노당의 심 의원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실개천’,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사이에는 ‘큰 강물’이 흐른다는 식으로 빗대기도 했다. 그러자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한강처럼 큰 강도 지하철로 연결돼 있다. 실개천은 건너다니는 게 잘 보이지만 지하로 연결된 것은 볼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노 대통령은 연정 문제에 대해 정계 학계 언론계가 진지하게 논의해 줄 것을 제의했다. 며칠째 국회가 시끌벅적하고 또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그 의도를 가만히 뜯어보면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

무엇보다 연정을 해야 할 이유로 지적한 여소야대(與小野大) 문제이다.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제대로 ‘대통령 노릇’ 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누굴 대통령으로 뽑을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여소야대도 권력을 한쪽에 몰아주지 않으려는 국민의 선택이다. 그것을 무시하려는 것은 민의를 거스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받은 것은 바로 노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 아닌가.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이 진정한 민의의 표출이기보다는 잘못된 지역주의에 의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연정을 하면 과연 지역주의가 극복될까. 오히려 지역주의를 고착시킬 우려는 없을까. 지역주의 극복이 ‘정치 인생을 걸 만큼’ 큰 문제라고 여긴다면 연정보다는 우선 최고 지도자로서 포용력 있는 정치를 펴는 게 정도(正道)일 것이다.

백번 양보해 지금의 여소야대 구도가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연정 구상은 어색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대화와 타협 아닌가. 더구나 그것은 노 대통령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해 온 바다. 최근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윤광웅 국방부장관 구하기’에 성공한 것에서 보듯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건 대통령 하기 나름이다. 사안에 따라 필요하면 얼마든지 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

노 대통령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열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조급하게, 혼자 힘으로 모든 걸 다 이루려고 하지 말라는 것을….

이진녕 정치부장 jinny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