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현장]탈북자들의 시장경제 체험

  • 입력 2005년 7월 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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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이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학생들과 4월 24, 25일 이틀간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과일을 파는 노점 체험을 했다. 이들은 도매상에서 구입한 15만 원어치의 과일 가운데 80%를 팔아 3만 원을 남겼다.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SIFE팀
탈북자들이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학생들과 4월 24, 25일 이틀간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과일을 파는 노점 체험을 했다. 이들은 도매상에서 구입한 15만 원어치의 과일 가운데 80%를 팔아 3만 원을 남겼다.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SIFE팀
《지난달 26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구민회관 옆 골목. 북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탈북인들의 먹을거리 장터’가 열렸다. 탈북자 25명이 직접 냉면과 편수(야채를 넣은 만두), 감자전, 옥수수떡(일명 펑펑이떡) 등 북한 음식을 만들어 파는 행사였다. 탈북자 교육단체인 자유시민대학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학생들이 탈북자의 시장경제 적응을 돕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탈북자 김난영(가명·41·여) 씨는 “감자전 7개 묶음을 2000원씩에 팔아 이틀 동안 17만 원을 남겼다”고 했다. 당초에는 4000원씩에 팔 생각이었지만 안 팔릴까 겁이 나 가격을 절반으로 낮췄다고 했다.》

○ 왜 손님에게 인사할까?

감자전을 팔면서 김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손님에게 인사하고 웃어야 하는 서비스정신’이었다.

“북한에서는 항상 공급이 달리니까 경쟁을 하지 않아도 물건이 다 팔리거든요. 상인들이 친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서비스정신도 없죠.”

2003년 북한을 탈출해 작년 2월 한국에 정착한 그는 “장사는 체질이 아닌 것 같아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며 웃었다.

테크노경영대학원 학생들이 탈북자 시장경제 체험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4개월 전.

이성훈(李城熏·35) 이대환(李大煥·30) 김길선(金吉善·26) 씨 등 학생 10명이 자유시민대학으로부터 탈북자 60여 명을 소개받아 △농수산물시장 경매 참관 △과일 노점 판매 △북한음식 장터 등 실전체험을 진행했다.

탈북자들은 “자본주의 경쟁원리를 체험해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도 “창업이나 장사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자본주의 교육보다 탈북자와 일반시민 사이의 벽이 이들의 정착에 더 큰 걸림돌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자릿세는 왜 내나?

학생들은 탈북자와 만나기 전에 2주간 교육을 받았지만 단시간에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기는 힘들었다.

탈북자들의 충격은 더 컸다. 4월 과일 노점판매 때는 텃세 때문에 4차례나 자리를 옮긴 끝에 겨우 장사를 할 수 있었다.

한 탈북자는 “사유지도 아닌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겠다는데 권리금(자릿세)을 요구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시민대학 유승란(柳承蘭) 실장은 “탈북자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게 권리금과 주식시장의 원리”라며 “창업에 대한 열정은 많지만 종합적인 분석력과 영업 마인드가 떨어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대환 씨는 “탈북자들이 소비자 중심의 사고를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가치’를 주고받는 것이 곧 경제라는 감이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 대학생들의 체험 경연

테크노경영대학원 학생들은 지난달 28일 영국계 은행 HSBC가 후원한 대학생 대상 금융프로젝트 경연 ‘SIFE(Students in Free Enterprise)’ 한국대회에서 탈북자와 함께했던 경험을 발표했다.

SIFE는 세계 1800여 개 대학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금융지식을 사회와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30년간 진행해온 국제 대학생 금융단체.

한국에서 처음 열린 이번 대회에는 테크노경영대학원과 함께 연세대, 건국대 등 6개 팀이 참가했다.

‘고교생들의 신용관리 예비교육’ 등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발표한 연세대 팀이 1등을 차지해 10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세계대회 출전자격을 얻었다.

테크노경영대학원 학생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잘 못해 떨어졌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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