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장관급회의]北, 南에 미소… 核 ‘알맹이’는 없어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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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은 2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15차 장관급회담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고 회담을 마무리했다.

남북은 이번 회담을 통해 △정치군사 △경제협력 △인도주의 분야에 관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모두 원래의 궤도로 복원했다.

이는 남북이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17일 면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토대로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북한 핵문제와 관련, 비핵화(非核化) 원칙을 재확인하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실질적’ 조치를 취해 나가기로 합의했을 뿐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도주의적 문제=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금강산 면회소가 8월 26일 착공될 예정이어서 완공이 되는 내년 8월 이후엔 이산가족들의 연중 상봉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고경빈(高景彬) 사회문화교류국장은 “이산가족 상봉이 일과성 이벤트를 벗어나 가족들이 같은 방을 쓰고 같이 잠을 잘 수 있는 길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북이 8월 중 6차 적십자회담을 열어 국군포로 및 6·25전쟁시기 납북자의 생사 확인 및 연락 교환 문제를 논의하기로 한 것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경제협력=이번 회담의 결과로 수산협력실무협의회와 남북농업협력위원회가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산하에 설치된다.

서해상에서의 평화 정착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되는 수산협력실무협의회는 7월 중 첫 회의를 열어 제3국 어선의 서해상 조업 단속 및 꽃게잡이철 남북한 공동어로작업방안 등을 논의한다.

‘먹는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인 북측의 제의로 설치되는 남북농업협력위원회는 차관급을 위원장으로 구성되며 7월 중순 개성에서 첫 회의가 열린다.

경추위도 7월 9일부터 나흘간 서울에서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포함한 남북경협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6월 이후 13개월 만이다.

▽정치군사분야=지난해 6월 열린 뒤 중단된 장성급 군사회담은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방안과 중단 상태에 있는 군사분계선 지역의 선전물 철거작업 재개 문제 등을 집중 논의한다. 회담도 처음으로 백두산에서 열린다.

남북은 장성급회담에서 2000년 1차 회담에서 합의했던 제2차 국방장관회담의 개최 문제도 논의한다. 다만 장성급 군사회담 정례화는 다음 회담으로 논의를 미뤘다.

이 밖에 남북은 9월 16차 장관급회담을 열고, 17차 장관급회담을 12월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회담은 종전과는 달리 상당히 원만하게 진행됐다.

청와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스텔스 전투기의 배치 문제 등 껄끄러운 사안을 전혀 제기하지 않는 등 북측 대표단이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며 “앞으로 진행될 남북대화에서도 이번 회담의 전통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盧대통령 “北측 시원스럽게 해줘 감사”▼

23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북한 대표단 일행 접견은 오후 5시부터 45분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오후 4시 55분경 청와대 본관 앞에 도착한 권호웅(權浩雄·내각책임참사) 단장 등 북한 대표단은 권진호(權鎭鎬)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과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의 영접을 받았다. 이들은 통상적인 외부 인사의 대통령 접견 때와 마찬가지로 1층 현관의 검색대를 거쳐 2층 접견실로 향했다.

접견실에서 기다리던 노 대통령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소개로 북한 대표단 일행 8명(지원요원 3명 포함)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권 단장과 악수할 때는 환한 얼굴로 “어서 오십시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귀한 손님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정 장관은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를 염두에 둔 듯 “같은 안동 권씨”라고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김정일 위원장께서 정동영 특사를 접견해 주시고, 뜻 깊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셔서 우리 국민이 모두 다 기뻐하고 있고, 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사의를 표하고 김 위원장에게 각별히 안부를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이번에 온 손님들은 자질구레한 문제들은 따지지 않고 시원스럽게 해 준 것 같아 매우 감사하다”며 “과거와는 달리 진지하고 실질적인 자세로 협상이 진행됐고, 의미 있는 많은 합의들이 이뤄졌다”고 치하했다.

이에 권 단장은 “김 위원장께서 그동안 북남 관계에서 체면을 앞세워 대결하는 것은 없애라고 하셨고, 정 장관과 이를 잘 받들어서 이번에 일이 잘된 것 같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권 단장은 핵 문제에 대해선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배석했던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변인은 또 “북측 대표단의 접견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나 구두메시지가 전달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발언하는 동안 북한 대표단 일행은 모두가 수첩을 꺼내 꼼꼼하게 기록했다. 접견을 마친 노 대통령은 본관 1층에서 북한 대표단과 기념촬영을 한 뒤 “바쁘신 시간을 내 줘서 감사하다”며 환송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회담이모저모-공동보도문 발표 3시간 지연… 한때 술렁▼

남북한은 장관급회담 사흘째인 23일 ‘밤샘 협상’ ‘막판 버티기’ 등 비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했던 종전의 남북회담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회담 문화를 선보였다.

막바지 조율 작업으로 공동보도문 발표 및 만찬이 3시간여 지연되는 진통을 겪었지만 양측 수석대표는 공동보도문을 직접 발표하는 전례 없는 모습을 보였다.

○…오후 6시 반으로 예정됐던 공동보도문 발표가 2시간 넘게 지연되자 회담장 안팎은 “막판 조율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후 8시 58분경 종결회의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어 오후 9시 13분경 남북한 대표단이 4층 프레스 센터로 동시 입장하자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남측 수석대표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북측 대표단장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는 모두 발언을 생략한 채 밝은 표정으로 각각 공동보도문을 번갈아 읽은 뒤 박수 속에 곧바로 만찬장으로 향했다. 이날 프레스센터에는 북한 촬영 기자단도 입장해 남측 사진기자들과 함께 취재했다.

○…쉐라톤워커힐호텔 지하 1층 만찬장에는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북측 대표단의 김성혜, 김영희 씨 등 여성 수행원들이 각각 짙은 파란색과 연분홍색 한복을 입고 와 눈길을 끌었다.

권 단장은 “정동영 장관이 욕심이 너무 많다. 현실성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것(이번 장관급회담 합의사항)을 이루려면 서명한 사람끼리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며 농담을 건넸다. 만찬을 주재한 이해찬(李海瓚) 총리는 “이번에 길을 닦았으니 평양 갈 기회를 얻게 됐다”며 화답했다.

권 단장은 “(이번 합의는) 그 어느 회담보다 조항이 많은 일거리이며 단번에 합의했다”고 설명한 뒤 만찬에 배석한 열린우리당 임종석(任鍾晳) 의원을 보며 “아, 386대표 주자 쭉 냅시다”라며 북측 표현으로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이날 만찬 메뉴는 상어지느러미와 게살 수프, 쇠고기 갈비살이 포함된 중국식 코스 요리. 이 총리는 “잘 대접해 보내는 게 도리일 것 같아 중국 출장을 마치자마지 곧바로 달려왔다”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에 앞서 정 장관과 권 단장은 이날 오전 순조롭고 자유로운 회담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정 장관은 이날 오전 전날과는 달리 노타이 차림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권 단장은 오찬 회동을 위해 로비에서 만난 정 장관에게 “넥타이를 안 하셨습네다, 새로워 보입네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오찬 장소인 호텔 내 명월관에 들어선 권 단장은 “섞어 앉자”고 즉석에서 제안해 78명의 남북 대표단원 전원이 9개 테이블에 어울려 앉아 오찬과 환담을 나눴다.

“납북자 송환하라”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단체 회원들은 23일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리고 있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 앞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북에 있는 가족의 사진을 들어올리며 시위를 벌이는 회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전경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미옥 기자
○…이날 호텔 로비엔 탈북자 3, 4명이 북측 대표단에 항의하기 위해 나타났다가 저지당하는 등 한때 소동이 벌어졌다. 이들은 당국자들이 나가 달라고 요구하자 “야, 이 ××들아”라며 심하게 항의해 로비가 술렁였다. 그러나 결국 보안요원들에 의해 호텔 밖으로 밀려 났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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