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예산 엉뚱한 곳으로 샌다…대상선정·사후관리 ‘구멍’

  • 입력 2005년 6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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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예산의 지원 대상은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실업자 등이다. 노인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데다 경기까지 나쁘면 복지 예산은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허술한 관리로 돈이 엉뚱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중산층 이상이 복지 예산의 혜택을 보는가 하면 저소득층의 생활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탁상행정이 적지 않다.

구체적으로 복지 예산이 새는 것은 △정책을 만들 때 지원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거나 △운영이 허술하고 △씀씀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사후관리 부실 때문이다. 기획예산처 변재진(卞在進) 재정전략실장은 “각 부처가 복지 예산을 늘려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어디에 어떻게 쓰고 사후 감독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 교통 보조금은 ‘눈먼 돈’

보건복지부는 2001년 7월부터 액화석유가스(LPG) 승용차를 가진 장애인에게 LPG 특별소비세(현재 L당 280원)를 면제해 주고 있다. 장애인이 복지신용카드로 연료비를 결제하면 복지부가 정산해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애인의 가족이나 친인척, 또는 다른 사람이 복지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감사원이 월 LPG 사용액이 300만 원을 넘는 장애인 47명을 조사해 보니 1인당 연간 평균 주행거리가 16만171km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작년 12월부터는 월 250L까지만 지원금을 주도록 했지만 부정사용을 막을 수 있는 근본대책은 여전히 없다. 정부는 올해 2458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지만 1000억 원 이상이 부족할 것으로 본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1만 원씩 버스비를 보조하는 제도는 탁상행정의 산물이다.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무조건 1만 원을 주기 때문이다. 월 1만 원은 잘사는 노인에게 의미가 없고 저소득층 노인에게도 큰 도움이 못된다. ○ 서민 난방비, 기업형 농가가 독식

연탄회사가 연탄 한 장을 팔면 정부가 300원을 보조해 준다. 그 대신 연탄회사는 정상가격 600원의 절반인 300원에 소비자에게 판다. 연탄은 주로 서민들이 사용하므로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서민들을 도와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실제로 혜택을 보는 것은 대규모 화훼농가들이다. 요즘은 서민들도 연탄을 별로 때지 않는다. 반면 기업형 화훼농가가 연료비를 줄이기 위해 값이 오른 등유 대신 연탄을 많이 쓴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서 밭 2000평에 꽃을 키우는 박모 씨는 “연탄을 연료로 쓰면서 난방비가 월 8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10월 이후 연탄 소비가 급격히 늘어 올해 4월까지 7개월간 소비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0% 넘게 늘었다. 고유가로 인해 연탄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민을 위한 연탄보조금이 연탄시장을 왜곡시켜 연탄회사와 화훼농가를 위해 쓰이고 있는 셈이다.

○ 공공임대아파트로 집 장사

국민주택기금이 지원되는 임대주택의 입주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기금이 낭비되기도 한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최근 강원 춘천시 퇴계동의 공공임대아파트 1110가구에 대한 입주자를 조사해 46가구의 위장 전입 사례를 적발했다.

이 아파트는 2002년 10월 무주택 가구주에게 임대됐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주공은 같은 해 10월 말 자격 제한 없이 선착순으로 세입자를 모집했다. 이때 웃돈을 챙길 목적으로 신청한 일부 투기꾼들이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서 사는 것처럼 위장했다. 이들은 2003∼2004년 전세 수요가 많아지자 무주택 서민에게 가구당 500만∼1400만 원을 받고 임차권을 넘겼다.

국민주택기금은 공공임대아파트 한 가구에 5000만 원(33평형 기준) 정도가 지원된다. 전체 건축비의 60%에 이르는 금액. 지난해에는 1600억 원이 주공에 지원됐다.

○ 효율화 방안 먼저 강구해야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복지예산이 워낙 적어 예산을 늘리는 데만 신경을 쓴 것이 사실”이라며 “이제 복지정책에 대한 공무원들의 인식 전환과 복지예산 낭비에 대한 국민의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KDI 문형표(文亨杓) 연구부장은 “요즘 선진국들도 복지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서 저소득층이 ‘복지병’에 걸려 자활의지를 잃지 않고 재기할 수 있도록 하느냐가 최대 고민”이라고 소개하고 “효율화 방안 없이 복지 예산을 늘렸다가 홍역을 치른 선진국들의 경험을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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