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 정치色 없애기 집중… 陽地는 없고 陰地전전?

  • 입력 2005년 6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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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취임 초 국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영구(高泳耉) 국가정보원장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국정원을 엄정 중립으로 개혁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고 원장은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간에 국정원장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갈등설이 불거지면서 현 정부의 국정원 개혁이 과연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가 세인의 관심으로 떠올랐다.

▽권력남용 폐해는 사라졌다?=고 원장은 평소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은 것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강조할 만큼 노 대통령의 ‘엄정 중립’ 원칙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래서인지 국정원장이 대통령을 대면(對面)할 기회도 현저히 줄었다. 노 대통령은 국정원의 보고 요청이 들어와도 “직접 보고해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 있느냐”고 물어 그렇지 않다고 하면 놔두라고 한 적도 종종 있다고 한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만 해도 국정원 간부들이 권력을 남용한 사실이 드러나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적도 있으나 이 정부 들어서는 아직 그런 사례가 없다.

고 원장은 각종 선거 때 상대방 후보의 약점을 알려 달라는 열린우리당 후보들의 요청을 거절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전과 비교할 때 국정원의 권력남용 폐해는 거의 사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무기력증이 새로운 문제?=특히 국내 파트가 쇠락했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최근 사석에서 “솔직히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국정원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파트의 이런 무기력증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해외 및 대북 관련 정보 수집과 국가안전기획 기능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치 파트의 약화는 바람직한 변화이지만 그런 분위기가 대북 및 해외 파트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문제 등 아주 중요하고 하루이틀에 답이 나오기 어려운 부분은 국정원이 깊은 정보를 챙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대북 및 해외 파트가 부진한 것은 고 원장이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등에게 국가안보 문제와 관련한 주도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새로운 역할 모델 필요=국정원이 최고 권력자의 의지나 정치적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고 국가 안보와 관련한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국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안정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정부의 ‘386코드’가 국정원의 대북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며 “권력의 코드에 좌우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의 분리를 포함해 국정원 직원들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체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국정원 직원 스스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때의 ‘추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국정원 보고를 직접 접하는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권력의 입맛에 맞는 정치 동향 보고를 하는 데 익숙해 변화된 위상에 맞는 새로운 정보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국정원장 경호만 국가원수급… ‘권력 2인자’ 옛말▼

국가정보원장이 이동할 때는 2대의 똑같은 차량이 함께 움직인다.

국정원장이 어느 차에 탔는지 구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국가원수급 인사의 경호가 이런 식이다. 물론 경호팀도 함께 이동한다.

국정원장이 외부에서 식사를 할 때에는 간이지휘소가 설치된다고 한다. 서울시내 특급호텔 몇 곳에 언제라도 이용 가능한, 일종의 ‘안가’에 해당하는 객실도 준비돼 있다.

2003년 고영구 원장이 취임한 이래 ‘탈(脫)권위주의’를 내세워 형식적인 의전절차를 많이 없앴다지만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장이기 때문에 내규에 따라 이런 기본적인 의전과 경호의 틀은 아직 유지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고 원장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타 기관장이나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하지 않는다”며 “이에 따라 의전팀 인력을 과거에 비해 절반 이상 줄였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취임 초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거나 부서별로 돌아가며 일반 직원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드는 등 조직 내의 권위주의 장벽도 해소하려 애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별난 경호 시스템에서 보듯, 국정원장 자리가 주는 권위와 격은 여전히 높지만 한때 ‘권력 2인자’로까지 불렸던 국정원장의 실권은 상당히 약화됐다는 평가다. 과거 정권에서는 매주 있었던 대통령과의 면담 횟수도 현저하게 줄었다.

이 때문에 최근 여권 일각에서 고 원장의 후임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거론하는 이면에는 ‘실권이 없는’ 국정원장 자리로 내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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