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경비정 대치]“우리가 데려간다” 양쪽서 밧줄묶어

  • 입력 2005년 6월 2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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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다에 높은 파도, 한 치 양보도 없는 자존심 싸움….’

1일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한일 양국의 대치 상황은 최근의 한일 관계를 나타내는 듯 팽팽한 긴장감이 이틀째 계속됐다.

한국과 일본의 경비정 13척이 대치하고 있는 곳은 울산 간절곶에서 16마일(25.6km) 떨어진 해역. 한국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쪽이지만 우리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領海·뭍에서 12해리까지의 바다) 밖이라 일본 순시선들이 이 해상에서 우리와 대치하고 있어도 불법은 아니다.

▽발단=지난달 31일 오후 11시 27분경. 일본 순시선 2척이 부산 기장군 대변항 동방 31마일(49.6km) 해상에서 조업하던 77t급 장어잡이 통발어선인 경남 통영 선적 ‘502 신풍호’(선장 정욱현·38)가 일본 EEZ 쪽으로 3마일 침범했다며 나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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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t 급 일본 순시선이 신풍호를 추격한 뒤 요원 4명이 신풍호에 뛰어올랐다. 이 과정에서 1명이 바다에 빠졌고, 다른 요원 1명이 그를 구조해 순시선으로 돌아갔다.

신풍호에 올라탄 나머지 2명의 일본 요원들은 어선을 세우려고 조타실을 점거하려다 신풍호 갑판장 황갑순(38) 씨가 조타실 문을 잠그자 조타실 창문을 깼다. 이어 황 씨를 봉과 헬멧으로 마구 때렸다.

신풍호 선장 정 씨는 1일 0시 19분경 부산 해경에 “일 순시선이 나포하려 한다”며 다급하게 신고한 뒤 일본 요원 2명을 태운 채 한국 해역 쪽으로 달아났다.

▽대치 상황=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 경비정 251함(250t 급)이 신풍호를 발견한 것은 이날 오전 1시 55분경. 경비정은 일본 순시선이 신풍호를 나포하지 못하도록 왼쪽 옆구리에 배를 대고 밧줄로 묶었다.

그러자 일본 순시선도 신풍호의 오른쪽 옆에 대고 밧줄로 묶어 해상 대치가 시작됐다.

이어 양국은 배를 속속 증파했다. 1일 오전 9시 45분경에는 한국 경비정 3척과 일본 측 경비정 4척이 밧줄을 묶고 대치했다. 이때는 한국 경비정 5척과 일본 측 6척이 대치했다.

오후 5시경. 파도가 높아 선박이 파손될 위험이 높아지자 양측은 밧줄을 묶은 선박을 한 척씩으로 줄이기로 했고 신풍호 왼쪽에는 울산해경 소속 130t 급 130함이, 오른쪽에는 일본 순시선 PC206함(150t 급) 1척이 밧줄을 묶었다. 해경은 이 과정에서 신풍호 선원 9명을 경비정에 옮겨 태웠다.

오후 7시 25분경 일본 측이 순시선 PLH06함(3000t 급)을 증파하자 한국 측도 오후 9시경 부산 해경 소속 경비정 3001함(3000t 급)을 배치하는 등 힘겨루기 양상을 보였다. 밤 10시 현재 한국은 총 6척이, 일본은 7척이 ‘비상대기’하고 있다.

한편 이날 오후 울산해경 김승수(金勝洙) 서장 등 5명이, 일본 측은 해상보안청 무라마쓰 바르와키 구난과장 등 4명이 해경소속 1503함에서 계속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EZ란…주권 관계없지만 어로독점권 인정▼

바다 한가운데서 한일 당국 간에 보기 드문 실랑이가 벌어진 것은 현장이 영해도 공동수역도 아닌 배타적경제수역(EEZ)이기 때문이다. 신풍호는 일본측 EEZ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의 제지를 받고 한국측 EEZ로 넘어왔다.

EEZ는 자국 연안에서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경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수역이다. 그러나 동해상에서는 200해리로 할 경우 일본 측과 겹치기 때문에 1998년 체결한 한일어업협정에서 합의한 경계선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경계선 부근에는 양국 공동어로구역인 중간수역이 설정돼 있다.

다른 나라 EEZ에서는 사전 허가 없이 어로활동을 할 수 없다. 다만 배타적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해와 달리 통항 목적이라면 자유롭게 오갈 수는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일 “중간수역이나 영해에서 일이 벌어졌다면 분쟁의 여지가 없을 텐데, 법적인 해석이 모호한 EEZ에서 일어난 문제라서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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