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간 침묵…윗선 보고 없었을까

  • 입력 2005년 4월 23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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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11월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이 추진한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사실이 22일 새롭게 밝혀지면서 이 사건이 복잡 미묘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의혹의 불똥이 청와대로까지 비화되는 양상이다.

▽국정원 정보보고 및 청와대 조사과정=대통령 국정상황실이 경위조사에 나선 것은 국정원의 정보보고에 따른 것이었다. 국정원은 지난해 11월 초 철도청 유전사업에 문제점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11월 9일 국정원 보고서를 접한 박남춘(朴南春·현 대통령인사제도비서관) 당시 국정상황실장은 실무담당자에게 “샅샅이 경위를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1주일가량 조사가 진행됐다.

국정원 정보보고서는 A4용지 1쪽 분량의 간단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철도청이 추진하는 사업은 한국석유공사, SK 등이 이전에 사업성이 없다고 보고 포기했던 것이고, 이 사업에 참여한 전대월(全大月) 씨가 운영한 ‘하이앤드개발’의 자금력이 빈약해 사업 추진에 무리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상황실에서는 먼저 석유공사와 SK 측을 상대로 이 사업을 포기한 적이 있는지를 확인한 뒤 철도청의 왕영용(王煐龍) 사업개발본부장을 상대로 조사에 나섰다. 11월 12일 국정상황실 직원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석유공사 등이 타당성이 없어 포기한 사업을 철도청이 추진하게 된 근거를 대라”고 추궁하자 왕 본부장은 “며칠 안으로 답변을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1월 15일 “계약조건이 달라져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알려옴으로써 국정상황실의 조사는 종결됐다.

▽의문점=무엇보다 국정상황실이 민정수석실에 조사를 의뢰하지 않고 직접 나선 점을 들 수 있다. 국정상황실의 조사는 행정관 1명이 전담했다고 한다. 물론 청와대 측은 “국정상황실에서 정책상황 점검 업무를 맡고 있고, 정보보고서에도 사업 타당성 측면의 문제점만 지적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연루 의혹을 사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은 2003년에 국정상황실장을 지냈었다.

경위조사를 자체 종결 처리한 채 윗선에 그 결과를 보고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국정상황실 측은 “당시 철도청이 이 사업을 포기함으로써 거액을 떼이게 됐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 사건이 불거진 지난달 말에야 민정수석실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국정상황실이 경위조사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비로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도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첩보 입수 당시 국정원이 이 의원 연루 소문은 몰랐는지 △아니면 알고도 국정상황실 보고 때는 누락했는지 △이 과정에서 대책회의나 압력은 없었는지를 둘러싼 진상이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으면 의혹은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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