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글’에 대한 전문가 시각

  • 입력 2005년 3월 24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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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日관계도 고려한 對日강공전략▼

노무현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 자신이 직접 대일 강경외교 노선을 펼치는 게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판단한 듯하다.

노 대통령은 현실에 강한 정치인이다. 독도는 현실의 문제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에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어영부영 대처했다간 나중에 비굴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정치 차원에서 볼 때 국민 지지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동북아 지역에서 대일 강공 드라이브가 먹힐 수 있다고 분석한 것 같다. 우선 중국이 역사왜곡이나 영토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각을 세우고 있다. 중일 관계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북한과 일본 문제에 관한 한 공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북은 정서상 가까워지고, 한일과 북-일은 다시 멀어지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노 대통령의 일본 관련 발언을 ‘국내용’으로 폄하했다가 지금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일본 우익들이 격앙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일단 ‘무대응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노 대통령은 더 강하게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뿌리를 뽑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일관계가 종속적 관계, 적대적 관계, 적대적 의존 관계를 거쳐 미래지향적인 상호 의존 관계로 나아가려다 다시 아슬아슬한 국면을 맞고 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냉혹한 현실 바로보고 국익 따져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를 언급하고 국가정책의 대전환을 이야기한 것은 빈대 한 마리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설사 일본이 과거사를 끄집어내고, 미국의 북한 핵문제 해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국가원수가 직접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미국의 경우 탈냉전기의 외교정책 전환, 9·11테러 이후 선제공격 정당화에 관한 독트린 등을 제시할 때 대통령이 나서지 않았다. 학자나 연구기관에게 연구를 맡겼고 행정부는 조용히 집행했을 뿐이다.

국가원수는 정책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며칠 밤사이에 편지를 써서 국가 정책의 대전환을 이야기 하는 것은 문제다. 대통령이 국민과 같이하는 소위 ‘대중 돌파 외교’의 달인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선동 외교’는 이제 그만 둬야 한다. 카타르시스는 있을 수 있지만 외교적 실익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실용주의적 균형외교를 모토로, 동북아 중심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는 이상론이다. 외교의 현실은 냉혹하다.

외교정책을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일본 중국 미국에 불만이 있어도 보듬어야 한다. 이웃을 먼저 내편으로 만들어야 국익을 좀 더 확고히 견지할 수 있다.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日 내셔널리즘 자극… 갈등 커질수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정서와는 일치하는 측면이 많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외교적 행위로 인식돼 국제관계에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 당연한 말이라도 수위와 표현이 문제가 된다.

일본의 우경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상당히 오래 진행돼 왔다. 말 몇 마디로 끝날 문제가 아니므로 움직임을 잘 파악해 단계적으로 대응하는 실용외교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초강경 자세는 정부가 구체적 대응을 모색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통령 발언은 최후통첩과 같은 것이다. 하나의 외교카드로 간직했다가 정말 필요한 시점에 써야 한다. 일본 역사교과서의 경우 4월 5일 검정결과 및 이후의 채택률을 지켜보는 일이 남아 있다.

일본 우파의 역풍이 우려된다. 이번 대응은 오히려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부추겨 강경한 맞대응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면 일본의 유화적 양심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발언권이 약화된다. 일본 미디어에 이미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당장 큰 악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풀뿌리 교류’가 위축되고 한류로 인한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나빠질 수 있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미일 공조도 손상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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