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뜻이라 해도 “NO”…與 “정책 거수기 그만”

  • 입력 2004년 11월 1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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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정부안을 무조건 통과시켜주는 통법부(通法府)인줄 아는 모양이지?”

열린우리당이 주요 정책현안의 처리 과정에서 이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례가 부쩍 많아졌다. 최근 입법을 앞두고 논란을 빚고 있는 종합부동산세 신설과정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청와대 생각’이라고 해도, ‘당-정-청간에 협의를 끝냈다’고 은근히 압박을 해도 ‘소신파 의원’들은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들어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들이다. 정책정당 표방을 계기로 생겨난 일종의 ‘권력 이동’으로 볼 수도 있다.

▽당정협의, 커지고 있는 당의 목소리=12일 개최된 열린우리당 정책의총. 이 자리에서 당 지도부는 전날 당-정-청이 협의한 종합부동산세 신설을 당론으로 확정지으려 했다. 그러나 회의도중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조세저항을 부를 수 있는 안에 대해 왜 의견 수렴을 하지 않았느냐.”(A의원)

“내가 재경위원인데도 그동안 논의는커녕 세부 내용조차 알지 못했다.”(B의원)

이에 앞서 4일 열린 당-정-청 회의에선 이계안(李啓安) 제3정조위원장이 회의장을 두 번이나 박차고 일어서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부안 곳곳 제동=기획예산처와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균형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기획예산처 입장에선 여당처럼 인심을 팍팍 쓸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여당의 목소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았다.

예산당국의 한 간부는 “당에서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무작정 7조원은 더 늘려야 한다고 우겨 깎느라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가 국회연설에서 “내년에도 내수가 어려울 전망이어서 경기진작을 위해 국회 심의과정에서 예산안을 다시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당정 합의를 거쳐 국무회의까지도 통과한 사안을 당에서 다시 뒤집은 사례다.

▽과도기적 진통 vs 정책효율성 논란=당-정-청 협의과정에서 불거지는 불협화음은 당이 정책을 주도하려는 데서 비롯된 ‘과도기적 진통’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한 중진의원은 “예전에는 정부가 만든 안을 형식적으로 검토하고 무조건 통과시켜줬지만 앞으론 당이 ‘거수기’ 역할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밖에서 볼 땐 마치 불협화음으로 비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당정간 합의하에 적절한 역할분담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정부 여당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참여의 폭을 지나치게 넓혀놓아 정책추진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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