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흔들기]與의원이 ‘돌던지기’ 앞장… 法무시 부추겨

  • 입력 2004년 11월 14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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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다른 국가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것은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가의 체제와 법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권위는 행정권력이나 정치권력의 권위주의와는 다르고 승복과 존중이 우선돼야 한다는 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사법부를 ‘수구’ 또는 ‘반동’으로 몰면서 정략적으로 공격하고 있고 승복과 존중 대신 무시와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가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법 권위 무시 실태=여권은 5월 헌법재판소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했을 때 ‘민심의 선택’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5개월 후 똑같은 구성원의 헌재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이를 비난하면서 재판관 개인들에 대해 ‘인신공격’까지 퍼붓고 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등 일부 친여 단체는 헌재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치권의 사법 무시 행태는 법정 안에서도 이뤄진다. 5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신계륜(申溪輪) 의원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부가 항소를 기각해 의원직 상실이 가능한 형량이 그대로 유지되자 방청석에서 재판부에 대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또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민련 이인제(李仁濟) 의원 1심 법정은 선고 직후 난장판이 됐다. 유죄 선고가 나자 방청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를 향해 ‘나쁜 ××’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종린(李鍾璘) 범민련 명예의장은 8월 법원 앞에서 재판 거부를 선언하기도 했다.

▽원인과 문제점=여권의 사법부 흔들기는 단순히 헌재의 위헌 결정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고 법조인은 말한다. 헌재의 결정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기존 사법부 인적 구성에 대한 여권의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게 법조인들의 분석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비롯해 유시민(柳時敏) 의원이 헌재 재판관에 대해 인신공격성 비난을 한 것과 이목희(李穆熙) 의원이 재판관들의 과거 경력을 들추며 사퇴를 요구한 것에서 그 ‘속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여권 핵심에서는 보수적인 판사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이 같은 사법 무시는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반국민의 사법 경시와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새 정부 들어 정치권에서 기존 권위를 부정하는 풍조가 만연하면서 법의식이 희박한 국민이 사법부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무시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법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관성과 형평성을 잃은 재판 결과가 국민의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과 기업인의 항소심 재판 결과. 재판부가 이들에게 대대적인 ‘형량 세일’을 해주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힘없는 국민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사법부라는 점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경시 풍조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귀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법조인들은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사법 경시 및 사법 훼손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권의 각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제도적 미비점도 보완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이 먼저 각성해야”=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국회나 국회의원들의 막무가내식 사법부 흠집 내기는 그대로 국민의 의사표현이나 행동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 중견 변호사는 “합리성이 결여된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사법부 경시 풍조는 정치적 이해를 앞세워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행위”라며 “정치권의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법은 존중돼야 하는 약속이라는 점에서 먼저 정치권부터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법정소란 대책 문제점=현재 단독, 합의부를 합쳐 200여개의 재판부가 있는 서울고법, 서울중앙지법, 행정법원, 가정법원 법정의 질서유지를 위한 법정 경위 인력은 모두 합쳐 75명 안팎.

별도의 청원경찰 인력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주로 법정 외부 경비 등에 활용되고 법정 내 소동은 이들 법정 경위의 몫이다. 법정에서 소란이 발생해도 법정 경위 1명으로는 적절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

법적으로 이런 법정 소란 행위자에 대해 재판부가 20일 이내 감치나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명령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판부가 이런 강경 대응을 꺼리는 데다 실제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에 대해 20일 이내 감치는 별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또 형법상 ‘법정모욕죄’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검사의 기소가 있어야 한다.

법원행정처는 최근 효율적인 법정 질서 유지를 위해 ‘법원경찰대’를 창설하는 방안을 마련해 법정 경위 등에게 회람시켰다.

▽사법부 자성도 필요=법조인들은 사법부 스스로도 무너진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법부가 판결에 있어 어떤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는 일관성을 가져야 하고 또 어떤 경우에도 형평성을 갖춘 결과를 내놓는다는 국민적 신뢰감을 얻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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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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