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푸틴 정상회담]韓-러 관계 10년만에 한단계 격상

  • 입력 2004년 9월 2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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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한-러 확대정상회담에서 양국 정부 관계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양국은 에너지와 우주기술 분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춰 회담을 진행했다. 모스크바=박경모기자 momo@donga.com
2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한-러 확대정상회담에서 양국 정부 관계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양국은 에너지와 우주기술 분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춰 회담을 진행했다. 모스크바=박경모기자 momo@donga.com


“오늘 우리가 서명한 문서를 다 합치면 40억달러가 넘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오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함께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40억달러는 지난해 한국과 러시아 간 교역규모(41억8000만달러)와 맞먹는 액수.

정상회담 직후 체결된 LG와 타타르스탄 국영석유회사 간 정유화학단지 건설계약(17억달러 규모)을 포함한 8개의 협정 및 양해각서의 경제적 가치를 ‘덧셈’한 것이었다. 그만큼 이번 정상회담은 경제 협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노 대통령은 전날 동행 기업인 만찬간담회에선 “기업이 나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두 정상은 1994년 6월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간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선언했던 ‘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관계’를 이번에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다.

이는 한국과 중국이 지난해 7월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선언한 데 비해서는 한 단계 낮은 수준. 그럼에도 10년 만에 양국관계에 질적인 변화의 단초가 놓인 것은 노 대통령의 동북아시대 구상과 푸틴 대통령의 극동시베리아 개발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베리아 에너지자원 개발 협력=극동시베리아 지역의 석유, 천연가스 개발 참여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는 한국은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사할린의 베닌스키와 서(西)캄차카 지역 유전 공동개발 협력약정을 체결하는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에너지 부문 국유화 움직임 때문에 무산될 위기에 빠진 이르쿠츠크 인근 코빅타 가스전(매장량 2조m³) 개발 사업은 구체적인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송유관 건설 사업도 “협의해 보자”는 선에 그쳤다.

▽군사기술도 협력=공동선언에 ‘군사기술 협력 추진’이란 문구가 들어간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러시아 경협차관 일부를 무기로 받는 대신 러시아의 무기 개발 관련 첨단기술을 이전받겠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회담에서 “러시아제 무기를 유지하는 데 문제점이 있는 만큼 앞으로는 기술 협력에 더 역점을 두자”고 제안했고 이에 러시아측이 방산기술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요구해 공동선언에 반영됐다.

▽심야 ‘다차’ 회동에서 북핵 논의=20일 밤 푸틴 대통령의 개인별장에서 이뤄진 두 정상의 비공식 만찬회동은 오후 11시까지 2시간15분가량 진행됐다. 두 정상은 배석자 없이 1 대 1로 대화를 나눴고, 보드카를 함께 마셨다는 후문이다.

비공식 회동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양국이 북한에 대규모 에너지 지원을 하자는 등 대북 포괄지원 방안에 관한 얘기도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21일 공동회견에서 “러시아와 남북한 3자간 에너지 및 교통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다. 3자 협력은 정치적으로도 전망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동선언에는 러시아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 탓인지 ‘북한 핵’이라는 표현은 들어가지 않았다.

모스크바=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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