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미국과 대등할 수 있다고…”

  • 입력 2004년 9월 6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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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5일 MBC TV의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이대로 한 5년, 10년 지나가면 한국은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미국과 대등한 자주국가로서의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지금 우리는 100년 전 중국과 일본,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사분오열하다가 국권을 빼앗긴 힘없는 나라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 국민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자 하느냐에 따라서 동북아의 구도는 달라질 것”이라고도 했다.

노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듣기 좋다. 문제는 공무원들조차도 노 대통령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 부처의 한 간부는 “적어도 20∼30년 이내에 미국과 대등할 수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며 “정치인으로서 ‘국내용 발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 중견 외교관은 “대통령의 말처럼 현재 한국은 100년 전의 한국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은 더 막강해졌다는 것이 한국의 고민”이라고 지적했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도 지난달 18일 한 공개 강연에서 “‘한미관계를 동등한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통상 말한다. 그러나 개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 관계도 동등하게 발전하기 어렵다. 국력, 부존자원, 인구, 면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반 장관의 지적대로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크다. 단적인 예로 한국의 연간 국방비(약 18조원)는 미국이 12척이나 갖고 있는 항공모함 1척의 제작 및 연간 함대 운영 비용에 불과하다.

정치지도자가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냉철한 현실인식에 발 딛고 있지 않을 경우 국민에게 ‘착시(錯視)현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착시현상의 종착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우물 안 개구리’의 처지다. 그 운명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를 뼈저리게 겪었던 100년 전의 역사적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될 듯하다.

부형권 정치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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