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좌파 독립운동 재평가를 보는 눈

  • 입력 2004년 8월 2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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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좌파계열에서 독립운동을 한 인사들도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좌파도 항일투쟁에 참여했지만 좌우 대립의 역사 속에서 우파만큼 평가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좌파를 택한 것 자체가 독립운동의 한 방편이었다는 주장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과거사 정리가 오늘 이 시점에서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좌파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광복 후 북한정권의 수립에 참여했거나 이를 지지한 인물들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그들을 일제 때의 활동만을 떼어내 평가하기는 어렵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사실(史實)로 기록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평가와 기술(記述)은 다르다. 평가에는 가치판단이 개재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1948년 5·10선거를 통해 세워졌다. 이승만의 단정(單政)노선에 대해 여러 시각이 있지만 그것은 국민의 현실적 선택이었고, 그 선택 아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그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전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항일기록을 찾아내 훈장까지 달아줄 수는 없는 일이다. 국립묘지 안장을 원한다면 들어주기라도 할 텐가.

물론 순수하게 항일운동만 했거나, 온건 중도 민족주의자였으나 분단과 함께 좌파로 매도당한 인사들은 신원(伸’)돼야 한다. 문제는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제하의 좌파는 갈래가 수십 가지다. 같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광복 후 월북한 사람도 있고, 안 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월북자는 일단 서훈 대상에서 제외되는가.

이 문제는 통일 후나 남북 화해가 좀 더 진전된 뒤로 미루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일제 청산만 가지고도 온 나라가 이리 갈리고 저리 갈릴 판이다. 뭐든 하나씩 매듭짓고 앞으로 나갈 생각은 안 하고, 논쟁의 최종 조정자가 되어야 할 대통령이 앞장서서 문제를 만들어내는 격이니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좌파 독립운동 재평가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정 정권이 서두를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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