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대표 “파병 안해도 잃을 것 없어"

  • 입력 2004년 7월 31일 15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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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은 요즘 이라크 파병 철회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 26일부터 전국 16개 시·도당이 동시다발적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국민 10만명 동참 릴레이 단식도 함께 벌이고 있다.

김혜경 민노당 대표는 이미 23일,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광장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민노당‘파병 철회’단식에 의료진 “단식부터 철회해야”▽

그러나 단식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혈압 이상' 경고를 받았던 김 대표는 단식 8일째인 지난 30일, 결국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한낮이면 40도가 넘는 찜통 천막 안에서 고열증세를 보이다 결국 '혈당 저하'로 입원했다.

김 대표는 의사들의 강경한 만류에도 불구, '치료를 받은 뒤에 다시 단식에 복귀하겠다'며 강행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의사들로부터 '단식 철회'를 요구받고 있는 사람은 김 대표 뿐만이 아니다.

김 대표와 함께 단식을 시작한 이영희 최고위원 역시 "당뇨 때문에 단식을 강행하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은 상태이고 단식 9일만에 7㎏의 체중이 빠진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도 결국 31일, 단식 열흘 만에 농성을 중단했다.

국회에 등원한 지 정확히 100일 만에 민주노동당이 다시 ‘길 위의 정치’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이들에게 이라크 파병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7월 26일, 나흘째 ‘곡기를 끊은’ 김 대표에게 이라크 파병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입맛 쓴’ 질문들을 대신 던져봤다.

질문에 조용조용히 말을 이어가던 그는 ‘한미동맹 균열론’을 얘기하면서 유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가 파병 안하면, 미국이 한국에 핵폭탄이라도 떨어뜨린다더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지역에서 무슨 재건”▽

-이라크 파병을 하지 않을 경우, 대미 경제 마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 같다.

“그런 염려는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미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는 게 있나. 오히려 70년대부터 맺어온 아랍 국가들과의 유대관계가 더 중요하다. 이라크전쟁은 석유패권을 갖기위한 미국의 침략전쟁이다. 그런 전쟁에 파병해서 아랍국가와 관계가 깨질 때 훨씬 더 큰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

-그러나 어찌됐건 미국이 석유패권을 갖게 되면, 결국 석유에 대해서 만큼은 대미 종속도가 높아지는 것 아닌가.

“석유 공급선을 미국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중동의 다른 국가들과 직접 거래하는 방법이 있지 않나.”

-이라크 재건을 통한 제2의 중동붐을 일으켜 보자는 얘기도 있다.

“그건 이라크 국민들이 재건에 직접 나섰을 때 얘기다. 그럴 때 이라크 민중들의 요청에 의해 파병을 해야 의미가 있다. 설사 경제붐이 인다고 해도 이익을 보는 건 몇몇 한국 기업뿐이다. 게다가 파병지인 아르빌은 미군과의 전쟁을 치르지 않은 곳이다. 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지역에서 무슨 재건을 하겠는가.”

-하지만 이라크 국민 중에는 한국의 파병을 바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있다면 일부 지배 계층 사람들일 것이다. 이라크 재건 자체가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이라크 국민들이 한국군 파병을 원할까. 아르빌은 이라크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쿠르드족 지역이어서 오히려 새로운 분쟁이 우려되는 곳이다. 미군도 가기 꺼리는 그곳에 한국군을 보내려는 미국의 속셈이 뭔지 궁금하다.”

▽“미국에 진 빚, 갚을만큼 갚았다.”▽

-한미 동맹에 금이 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미동맹 50년동안 분단 고착화말고 남은 것이 무엇이 있나.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일방적으로 수렴하는 것은 진정한 동맹이 아니다. 설혹 한미 동맹에 금이 가더라도 당당하게 다시 관계를 정리하면 되지 않나."

-파병을 하지 않으면 한미 동맹 관계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시각에는 동의하나.

“미국을 완전히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재정립을 하자는 것이다. 이라크에 파병 안하면, 미국이 한국에 핵폭탄이라도 떨어뜨리겠다고 압력을 넣고 있나. 정부는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건가.”

-대북 핵문제 해법과 연관지어 미국의 강경책을 만류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파병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한반도의 평화 유지는 미군의 주둔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북한도 핵을 갖고 있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미국도 핵을 갖고 있으면서 일방적으로 북한만 규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에 남한은 아무런 실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한미동맹과 관련해 이른바 ‘공짜점심은 없다’는 식의 보은론(報恩論)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흘린 미국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이미 갚을 만큼 갚았다. 베트남전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이 파병을 했나. 베트남 민중을 죽여가면서 우리도 피를 흘렸다. 고엽제후유증에 고통 받는 우리 국민들이 그 증거 아닌가. 이만큼 했으면 빚은 갚은 것 아닌가.”

▽“테러에 맞서서, 더 큰 힘으로 테러하겠는가.”▽

-전투병 파병이 아니라 공병과 의료진의 파병이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좋은 일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인도주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테러에 굴복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럼 테러에 맞서서 파병을 할 텐가. 테러에 맞서기 위해 파병하겠다는 것은 우리가 더 큰 힘을 가진 집단을 보내 테러를 하겠다는 논리나 다름없다. 테러를 막는 근본적인 방법이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이다.”

-김선일씨 사태 이후에 파병을 철회하면 한국은 ‘상황에 따라 파병 약속을 저버리는 나라’라는 국제인식도 있을 텐데.

“필리핀, 태국 이런 나라들이 파병을 했다가 철군했다. 하지만 철군했다고 이 나라들이 국제사회에서 따돌림 받고 있나. 오히려 우리는 파병을 강행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똘마니’라고 비난 받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 철군을 한 다음에도 피랍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사태는 어떻게 보나.

“필리핀은 한 사람의 자국민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철군을 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두터운 나라다. 이라크 무장단체가 보기엔 현지의 필리핀 기업이나 노동자들이 모두 미국에 협력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일 것이다. 철군을 하긴 했지만 미국과 완전히 관계 단절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테러가 이어지는 것이다.”

▽“노 대통령 아들도 이라크 보낼 수 있을까.”▽

-필리핀의 예를 한가지 더 들어보자. 필리핀은 주둔 미군의 철수를 주장했다가 실제로 미군이 철수하자 미국 및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당혹해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제 자본의 흐름을 냉정히 생각해 보자. 왜 미국 자본만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미국 자본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나라의 자본도 얼마든지 유치할 수 있다. 그럴 때 미국에 대한 경제 예속 역시 줄어들 것이다.”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국익이 거꾸로 간다고 보나.

“글세... 미국으로 인해 한국이 별로 도움을 받은 것이 없다고 본다. 역시 자본의 유입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금융자본이나 소비적인 성격의 자본은 많이 유입시켰지만 생산적인 자본은 들여보내지 않았다. 한국이 미국에 의존적인 상태에서 미국의 국익과 함께 가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나.”

-파병은 실리로 따져봐도 이익이 없다는 얘긴가.

“그렇다. 파병은 명분 뿐 아니라 실리로 따져 봐도 아무 이익이 없는 결정이다. 파병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도 우리가 다 대야 하는데 차라리 그 돈을 국내에 투자해서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게 훨씬 타당한 방향이다.”

-민주노동당에게 이라크 파병은 어떤 화두인가.

“이라크 전쟁이 석유를 위한 미국의 침략전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침략 전쟁에 우리의 아들들을 보낼 셈인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아무리 봐도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쉬운 방법으로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아들도 이라크로 파병을 보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 해봤을까. 파병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번 민노당의 투쟁으로 정부가 파병을 철회할 것으로 보는가.

“물론 어려울 거다. 하지만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 파병 한 다음엔 철군 투쟁을, 그 다음엔 또다른 추가 파병 저지를 위한 투쟁을 할 것이다. 달라진 상황도 있다. 우리당과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믿을 건 국민의 힘 밖에 없고, 남은 건 대통령의 결심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농성장을 빠져나오는데, 바로 옆 미국 대사관 앞에 길게 줄지어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미국행’ 비자를 발급받으려는 ‘한국’사람들이다.

그리고 일주일 뒤면, ‘한국’젊은이들이 ‘이라크행’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김현 동아닷컴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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