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호/개(犬)를 위한 弔意

  • 입력 2004년 6월 11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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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들의 애견은 엄연한 백악관의 한 식구다. 신상에 조그만 변동이 있어도 곧 기사화될 정도로 대접을 받는다.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애견과 뒹굴며 노는 모습에서 미국인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오늘도 세상은 조용하고 평안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키우던 애견 ‘스팟’이 2월 안락사했을 때 부시의 슬픔은 컸다. 15년 동안이나 함께 지냈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외국 순방길에도 동행했던 스팟이었다. 백악관은 “대통령 부부와 모든 부시 가족이 스팟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있다”고 성명까지 냈다. 위로의 편지도 많이 받았다. 9일 G8 정상회의에서도 뒤늦게 애도의 말을 들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조의(弔意)를 표한 것이다.

▷부시로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 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개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른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기심이 없는 친구가 개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더 돈독해졌음을 보여준 양국 관계다. 9·11테러 이후 일본은 미국이 믿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맹방임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고, 이제는 두 정상이 애견의 죽음을 놓고 조의를 표하고 받을 정도의 사이가 된 것이다.

▷공적(公的) 관계는 아무리 깊어도 사적(私的) 관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친해야만 부탁도 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법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힘과 영향력은 결국 상대 국가와 사적으로 얼마나 네트워킹이 잘 돼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미국을 방문하는 정상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 텍사스 크로퍼드에 있는 부시의 개인목장에 초청을 받아야 사적인 얘기가 통하는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두 번째 미국 방문 계획이 잡혀 있는지 모르나 혹 있다면 고이즈미의 조의가 참고가 됐으면 한다. 노 대통령은 애견을 키우지 않는다. 취임 초 청와대에는 삽살개 두 마리가 있었으나 대통령이 “갇혀 있는 게 불쌍하니 풀어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함을 보여주는 것이니 부시 대통령과 공통의 화제를 못 찾으리란 법도 없지 않은가.

이 재 호 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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