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제균/프랑스 총리

  • 입력 2004년 6월 9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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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 정권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사실상 대통령이나 다름없었다. 프랑스는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고 국방 및 외교를 담당하는 대신 총리는 내정 전반을 총괄하도록 역할분담이 돼 있다. 조스팽은 총선 승리로 의회를 장악한 야당지도자였다. ‘동거(Cohabitation)정부’ 총리로 내정을 주무른 조스팽은 외교영역까지 침범했다. 각종 정상회담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마음이 차기 대통령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정책을 남발한 사람도 시라크가 아니라 조스팽이었다.

▷절치부심했던 시라크 대통령은 대선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했다. 시라크가 택한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전임자와는 정반대였다. 경제인 출신의 실무형으로 내정을 차근차근 챙겼다. 라파랭의 후방지원으로 시라크 대통령은 이라크전쟁 전후 반미외교의 스타로 뜰 수 있었다. 하지만 라파랭 총리는 인기 없는 연금개혁을 밀어붙이다 역풍을 만나 지지율이 급락했다. 지금은 경질 위기에 몰린 그는 전형적인 ‘방탄총리’다.

▷힘이 있든 없든 총리는 괴로운 자리인 모양이다. 프랑스 전직 총리들은 지난해 르몽드지를 통해 총리 시절의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총리가 ‘까다로운 유권자와 거만한 대통령 사이에 끼인 신세’라고 토로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의 미셸 로카르 전 총리는 “총리를 안 했어도 이혼했겠지만 총리를 하는 바람에 더 빨리 했다”고 말했다. 레이몽 바르 전 총리는 “1월 1일 첫 출근과 함께 365일이 꽉 차 있는 일정표를 받아보라. 퇴근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프랑스처럼 대통령제인데도 총리를 두는 한국의 총리제도는 그동안 ‘방탄’만 양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총선 이후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 실시를 약속했다. 샤를 드골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골은 “대통령은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문제에 전념하도록 총리가 보완 역할을 해야 한다”며 분권형 대통령제의 싹을 틔운 인물이다. 그러나 대통령 권위에 대한 도전은 일절 용납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신임 총리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과 역할을 나눠줄지 궁금하다.

박제균 파리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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