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선거법 규정, ‘고무줄 잣대’ 곳곳서 실랑이

  • 입력 2004년 4월 6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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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을 앞두고 개정된 선거법 규정이 너무 복잡하고 애매한 데다 각 지역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이 달라 “지역구마다 별도의 선거법을 가진 격”이라는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법은 하나, 해석은 천차만별=‘50m다’ ‘아니다, 전봇대 간격이다’ ‘서로 교감할 수 있는 거리로 봐야 한다’….

2인 1조로 선거운동을 할 때 조별 간격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서울시내 3곳 지역선관위의 답변이다.

선거운동원이 몰려다니면서 소음 등을 발생시키는 불편을 줄이자는 취지는 오간 데 없고 후보측에서 ‘대표적인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만 받고 있다.

서울 K구에 출마한 후보의 선거운동원은 “법규가 모호해 선관위가 단속 실적을 올리는 데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선거운동원이 후보와 동일한 모양과 색상의 복장을 해선 안 된다는 규정도 마찬가지. 서울 D구의 한 선거운동원은 “지방에서는 옷 단속을 집중적으로 하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며 후보와 동일한 복장을 버젓이 하고 거리를 누볐다.

또 다른 선거운동원은 “정당도 없는 무소속 후보들은 운동원의 복장이라도 같아야 후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는데 약자만 손해 보는 악법”이라고 비난했다.

자원봉사자에게는 편의를 일절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으나 이것도 편법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서울 S구의 한 후보 사무실 상황실장은 “지역선관위 직원이 ‘3000원 이내의 간식은 제공해도 좋다’고 묵인했다”면서 “다만 음식점을 이용하지 말라는 충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서 줬다”고 실토했다.

▽난감한 회계처리=“기름값의 경우 유세 차량은 선거비용에, 후보자 차량은 정치자금에 해당된다고요?”

개정 선거법상 복잡해진 회계처리 규정으로 선관위에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J구 한 후보의 회계책임자는 “선거사무실을 찾는 손님들에게 3000원 이하로 대접하는 다과비는 선거비용에 속하지만 직원들의 커피 값은 정치자금으로 분류하라고 하더라”며 “우리도 헷갈려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다른 후보의 보좌관은 “지인이 수고한다고 10만원어치의 음료수를 사오면 그 10만원도 선거운동비의 수입란에 기재해야 한다”며 “후보자측에서 의도하지 않은 것도 회계장부에 기록해야 한단 말이냐”고 반문했다.

▽준비 안 된 선관위=서울 J구의 한 후보측은 “규정 해석을 놓고 선관위와 몇 번이나 다퉜다”며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기 위해 요즘에는 아예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지역선관위 지도계장은 “규정이 지나치게 복잡해 우리도 일일이 지침표를 들춰보며 답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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