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당사로… 공판장으로… 이벤트정치 바람

  • 입력 2004년 3월 24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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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신임대표는 24일 오전 국회 앞 한나라당 당사가 아닌 여의도공원 건너편 ‘천막 당사’로 출근했다. ‘부패와의 절연’이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호화 당사란 평을 들었던 국회 앞 당사에는 아예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여의도 당사 임대비에 안희정(安熙正)씨의 돈 2억원이 유입됐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1주일 만에 영등포 청과물시장 내 폐공판장으로 긴급 이주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이 당의 상징인 노란색 잠바를 입고 다니자 민주당은 “노란색은 우리 당의 상징”이라며 더 짙은 노란색 잠바를 입기 시작했고, 한나라당도 뒤이어 파란색 잠바로 통일했다.

헌혈행사를 놓고도 ‘원조 논쟁’이 벌어진다. 20일 열린우리당이 당직자 헌혈행사를 개최하자 당일 오전 헌혈행사를 준비했던 민주당은 “우리 당의 아이디어를 열린우리당이 도용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카리스마와 조직동원력을 바탕으로 한 3김(金)식 정치가 썰물처럼 빠지면서 빈자리를 ‘감성 정치’ ‘대중 정치’ ‘이벤트 정치’가 급속히 메우고 있다. 이성보다는 감성, 논리보다는 필링(feeling)에 의존하는 감성정치는 ‘감성 광고’ ‘감성 마케팅’ 등 이미 광고업계와 유통업계에 불고 있는 감성 바람의 아류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대선 때도 감성정치는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했다. ‘기타 치는 대통령’ ‘노무현의 눈물’ 등 대중의 머리가 아닌 가슴을 파고드는 홍보기법이 대중화되고 있는 추세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鄭東泳) 의장이나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 민주당이 선대위원장직 수락을 애원하고 있는 추미애(秋美愛) 의원도 모두 이미지에 강한 ‘감성 세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구정치권의 비주류였고 혈혈단신이었지만 대중에 대한 강한 흡입력을 무기로 당의 간판에까지 올랐다.

감성정치는 인터넷과 대중매체 시대, 속도로 승부하는 스피드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시대적 조류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28일 조순형(趙舜衡) 대표 체제 출범 이후 한때 당 지지도 1위까지 올랐던 민주당이 그 후 하락세를 거듭한 데에는 ‘감성정치’를 외면한 데에도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 조 대표는 개인적으로 ‘반부패 클린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당 전체의 이미지로 확대 재생산하는 이벤트나 ‘바람’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나 이벤트에 주력하는 감성정치에 대해서는 비판과 우려가 적지 않다. 콘텐츠(내용) 없는 이미지 경쟁이 정치의 희화화를 부추길 뿐이라는 지적이다.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강원택(康元澤) 교수는 “각 당 사정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공당들이 천막 치고 공판장으로 들어가 한국 정치권을 대표하겠다는 것을 방문하는 외국 손님들이 이해할지 모르겠다”며 “선거 이전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 이후에는 제발 본질적인 것을 바꾸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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